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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여름이면 몇 편씩은 꼭 보이던 공포영화가 올해는 단 1편만 나온다는데 그것도 독립영화라고 한다. 이쯤 되면 올해 한국 영화판에서 공포영화는 명맥이 끊어진 셈이다. 내 어릴 때는 여름이 오면 납량특집(납량 納凉 이라 쓰고 '남냥'이라 읽는다)이라고 불리며 공포영화가 줄줄이 개봉되고 TV에서도 귀신물만 줄창 방영하곤 했는데 이젠 돈이 안 되는 공포영화 장르를 영화인들도 외면한다니 한국 귀신의 수명이 다한 것인지, 세월호 참사와 국정농단, 청년실업과 노인 빈곤 등 현실이 더 공포스러워 굳이 공포영화를 찾아볼 이유가 없는 것인지.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70년대까지도 한국 공포영화는 열에 아홉은 머리 풀고 흐느끼는 젊은 여자 귀신이 주인공이었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처럼 서양 귀신은 자기 내부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데까지 갔는데 한국 여자 귀신은 여전히 착한 사람이었다가 억울하게 귀신이 되어 있었다. 등장하면서 하는 말이 "흑흑.. 억울하옵니다."  이 하소연을 못 듣고 기절하니까 하소연을 들어줄 용기 있는 자가 나올 때까지 나타나고, 또 나타나고...  물론 이것이 후진적이다는 말이 아니다. 그건 한국 귀신의 특징이었으니까. 한국 귀신의 특징은 억울하게 귀신이 되고,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서 나타나며 그래서 무조건 사람을 해칠 이유가 없다는 거였다.

 

 

진짜 무섭지 않은 귀신 이야기가 된다. 내친김에 하나 더. 공포영화의 고전이자 전설이 된 영화는 67년 작 <월하의 공동묘지>다. 박노식, 도금봉, 황해, 허장강, 머리를 풀어헤치고 입가에 피가 흐르는 미녀 귀신 강미애. 이승의 한이 서려 저승에 가지 못하고 복수하는 귀신 이야기이지만 지금 보면 공포영화가 아니라 코미디 영화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당시 영화에 나온 해골, 아기 울음소리, 고양이, 날아다니는 등불과 한이 서린 눈동자로 쏘아 보는 여자 귀신의 눈빛 등은 관객의 공포감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그럼 이런 귀신이 사라진 것이 더 이상 동시대적이지 않아서일까. 머리 산발하고 흐느끼다가 한이 풀리면 사리진다는 여성상이 요즘 세대에 먹힐 것이라는 말 자체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그래서 사라진 것일까. 당연히 한 많은 미녀 귀신이라는 정형은 수명을 다했다. 다른 시도가 필요하겠지. 그래서 돈 안 되는 장르라 작품도 줄었겠지. 그러나 한국 공포영화가 사라진 더 큰 이유는 <현실 사회가 주는 실제 공포가 영화가 만들어낸 가상 공포를 넘어서기 때문에 공포영화를 굳이 볼 이유가 없다는 지적>에도 개인적으로 한 표.

 

 

국제구호단체에서 조사한바, 아이들은 사는 곳에 따라 꿈과 두려움의 종류가 달라진다고 한다. 시리아의 아이들은 비행기 폭격과 폭탄을 가장 두려워했지만, 한국 아이들은 괴물과 귀신을 가장 두려워했다. 뉴질랜드 아이들은 상어가 무섭고, 캐나다 아이들은 거미를 가장 두려워했다. 

한국의 현실이 가상의 공포영화보다 더 두려워 공포영화조차 필요 없다면 그야말로 어떤 귀신 이야기보다 진짜 더 무서운 이야기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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