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 시절 서울대 교수였던 정운찬 총리가 한국은행 총재 물망에 오른 적이 있었다. 당시 지인에게 정 총리는 이런 말을 했다. <나 같은 촌놈이 서울대 교수만도 과분한데, 너무 분수에 넘치는 일 할 생각 없다. 교수 노릇 잘하고 있다가 금융통화위원이라도 맡을 기회가 있으면 학교 밖의 사회를 위해서도 하고 싶은 일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다.> 적어도 이 당시의 그는 할 수 없는 것까지 포함해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고 믿는 한국 주류사회의 대표적인 착각의식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그 뒤 정운찬 총리는 서울대 총장이 된다. 지난 대선 때는 야당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정치에 발을 담그지 않았다. 그 덕에 그를 향한 신비감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였다.정치가 정말 좋기는 좋은 것인지, 아니면 그의 감춰진 기질을 드러낼 기회라고 느꼈는지 그는 결국 총리가 된다. 그것도 정권의 전방에서 비난을 감수하라고 채워준 완장을 하나 떡 하니 찬 총리가 된다. 그에게 완장을 채워준 이에게 보답하듯, 완장을 채워준 이들의 문화를 빨리 습득해야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듯 쉽게 닮아갔다. 말 바꾸기가 습관이 됐고 그러다보니 말실수가 잦았다. 총리로 임명하며 세계적 석학이라고 침 튀기던 여당의 홍보가 과잉홍보였던가. 이제 입만 열면 실언하는 총리로 이미지가 추락했다.
정 총리의 실언은 지난해 대정부 질문에서 시작됐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북한 탈북자 문제를 얘기하며 <마루타가 뭔지 아느냐>고 묻자, <전쟁포로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라고 당황한 듯 말을 얼버무렸다. 박 의원이 <731부대를 아느냐>고 거듭 묻자, <항일독립군 아닌가요>라고 실언성 대답을 했다. <무슨 말이냐. 생체실험한 일본군대>라고 지적하자, 정 총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세종시 문제를 두고는 실언이라기보다는 막말을 주로 했다. 세종시 원안 사수대에 대해 <사수꾼>이라 했고, 행정부처를 옮기는 원안이 잘못됐다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세종시로 행정부처가 오면 나라가 거덜날지 모른다>고 표현해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부적절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렇게 말을 한다는 것은 이 정권이 국민의 아픔을 달랠 마음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까.
정 총리는 고인의 빈소를 찾으면서 최소한의 준비도 하지 않아 실수를 연발했다. 민주당 고 이용삼 의원의 빈소에서 유가족들을 만나 <초선의원인데 안타깝다>고 했고, 유가족은 <4선 의원이다>라고 불쾌감을 나타냈다. 또 정 총리는 <의원께서는 자제분들이 많이 어리실 텐데 참 걱정>이라고 하자 유가족들은 <고인은 결혼하지 않은 독신으로 처 가족이 없다>고 했다. 민망해진 정 총리는 자리를 옮겨 형제들에게 다가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이제 남은 형님께서 동생을 대신해 많은 일을 하셔야 겠다>라고 했고 유족이 <저 동생인데요>라고 하자 황급히 자리를 떳다고.
지금 정권을 꼭 빼닮은실언은 연속, 준비되지 않은 그들이 점점 더 불안하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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