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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자살비행

hherald 2015.03.30 18:34 조회 수 : 936

 

프랑스 남부 알프스에 추락해 150명의 목숨을 앗아간 독일 저먼윙스 여객기 추락 사고는 부기장 안드레아스 루비츠가 비행기를 의도적으로 급강하해 추락시킨 자살비행으로 결론이 나고 있다. 추락 현장에서 수거된 블랙박스의 음성기록장치를 확인한 결과 이같이 판단된다고 프랑스 검찰 등 조사 당국이 발표했다. 음성기록장치는 추락 전 상황을 말한다. 기장이 화장실을 가 조종실을 벗어난 사이 부조종사가 문을 걸어 잠궜고 돌아온 조종사가 문을 열라고 두드려도 부조종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부조종사의 호흡은 아주 정상이었다. 간간이 승객의 비명이 있었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비행기 추락을 몰랐다. 추락한 현장은 처참했다. 현지 산악구조대원들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산산이 부서진 여객기 파편과 신체 조각들이 온 산과 계곡에 흩어져 카펫처럼 깔려있었다"며 "이런 끔찍한 현장은 처음"이라고 했다. 사고 비행기가 지상에 내리꽂히듯 추락했음을 추정케 하는 대목이다.

테러의 흔적이 없으니 자살비행으로 굳어지고 그렇다면 고의 추락을 한 부조종사의 전력에 관심이 쏠렸다. 훈련 기간에 우울증을 앓아 일곱 달 동안 쉬었던 적이 있었다, 자택에서 찢긴 채 버려진 의료 진단서 등이 발견됐다, 자택에서 다양한 정신질환 치료 약물을 발견했다, 망막박리증으로 시력을 상실할 것을 두려워했다 등 자살비행의 뒷받침이 될 요인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장거리 비행 조종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그가 조종사 경력을 유지하지 못하게 될까봐 불안 또는 좌절감에 휩싸였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전 여자친구도 등장해 그가 자다가 "떨어진다!(We are going down!)"는 비명을 지르며 깨는 악몽에 시달렸다, 지난해 "언젠가 시스템 전체를 바꾸는 무엇인가를 할 거야. 그러면 모두가 내 이름을 알고 나를 기억하게 될 거야"라고 자살비행을 암시했다며 예고된 자살비행이라는 식으로 말을 보탰다.

자살비행이 분명하다면 이와 흡사한 과거 사고들이 있다. 2013년 11월 앙골라 루안다를 향해 가던 모잠비크항공 470편이 나미비아에 추락해 33명이 전원 사망했다. 당시 블랙박스 음성녹음장치에 기장은 부기장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 조종실을 비운 사이 문을 걸어 잠그고 땅을 향해 돌진했다. 이 음성녹음장치에도 부기장이 조종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녹음되어 있다. 1999년 이집트항공 990편 사건도 비슷하다. 부조종사는 기장이 조종실을 떠나자 자동조종장치를 풀고 비행기를 추락시켰다. 블랙박스에는 그가 추락 직전 아랍어로 "신께 맡긴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녹음됐다. 전문가들은 "자살비행은 자살 충동과 살해 심리가 결합한 결과"라며 "학교로 걸어 들어가 사람들을 무차별하게 죽인 뒤 마지막에 자살하는 범죄자의 심리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각국 항공사들은 이번 사건이 가능했던 이유가 조종실에 조종사가 혼자 있는 것을 허용하는 데 있다고 보고 '2인 조종규정'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영국 저가항공 이지젯이 당장 운항 시간 내내 조종실에 승무원 2명이 함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독일 항공업 협회도 성명을 내고 조종실 2인 규정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고 중동 에미레이트항공, 에어 캐나다, 노르웨이 에어 셔틀 등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2001년 9.11테러 이후 조종사가 조종실에 홀로 있을 수는 없지만 유럽에서는 2인 조종규정이 있는 항공사가 드물다. 독일 저먼윙스 자살비행이 그나마 사후약방문이라도 된 셈이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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