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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입양인의 비극

hherald 2018.10.15 17:28 조회 수 : 1532


1974년생으로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필립 클레이'라는 사람이 있다. 외국인 같지만 '김상필'이라는 한국 이름이 있는데 미국으로 간 한국인 입양아였다. 5살 때 버려져 고아원에서 생활하다 미국 어느 가정으로 입양됐는데 곧 파양된다. 조현병 판정을 받고 범죄를 저지르고 20대를 미국의 경찰서, 정신병원, 보호시설 등을 전전하며 보낸다. 결국 2011년 범죄가 누적돼 시민권 취득에 실패하고 한국으로 강제 추방된다. 한국에 온 그는 김상필이라는 자신의 존재를 알게 돼 친모를 찾으려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실패한다. 한국에서도 구호시설, 정신병원을 전전하는데 급기야 폭행 사건으로 교도소에 수감되고 출소 후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다. 그는 한국말을 한 마디도 몰라 한국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입양된 아이가 왜 시민권이 없을까. 이해하기 힘들지만, 시민권이 없는 입양인이 많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다시 드러났는데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입양 보내졌지만, 해당 국가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한 무국적 입양인이 2만3천 명에 달하고 1만여 명이 미국에서 무국적자로 지낸다고 한다. 입양아가 시민권을 갖지 못하는 것은 양부모의 무지와 소홀함 때문이지만 입양아의 모국인 한국 사회가 아이를 입양 보내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무책임의 산물이기도 하다.

입양은 한 인생의 운명을 바꾸는 것만큼 중요한 일인데 입양하는 당시 대부분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어린이나 영유아이기 때문에 입양을 스스로 결정하는 경우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어린 입양아의 과제다. 아이를 입양 보낸 한국이 입양된 순간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하고 손을 떼면 고립된 그의 운명은 누구의 손에 맡겨지는가. 바로 그들을 맡아준 사람의 손에 놓인다. 사람이 다 선하고, 입양을 한 양부모는 그중에서도 더 선한 인간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현실은 '착한 양부모'이기를 기대하는 데서 그치기에 파양되고 추방돼 다시 낯선 고국 땅으로 쫓겨와야 하는 '슬픈 추방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해외입양은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데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한국 해외입양의 특징은 민간 국제입양기관이 입양 업무를 위탁받아 시행한다는 것이다. 홀트아동복지회, 동방사회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한국사회봉사회가 해외 입양을 추진하는데 국가는 개입하지 않는다. 민간 기관에서 하니까 외국의 양부모로부터 수수료를 챙긴다. 입양에 시장원리가 개입한 곳이 한국이다. 국가는 입양인들을 보호할 역할을 방기했다. 한국에서 입양을 보낸 나라가 20여개 국가니까 결국 미국으로 보낸 입양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웨덴의 국제입양아동에 대한 연구를 보면 입양인은 현지인보다 자살률이 3.7배 높다고 한다. 결혼하는 비율은 낮고 약물 중독이나 범죄를 저지를 비율만 높았다. 지난해 자살한 필립 클레이(김상필)의 유해는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원 입양가정에 다시 돌려보내 졌다. 그의 유해를 미국으로 보내는 데 노력한 입양인모임에서 그의 입양을 진행했던 홀트아동복지회에 양부모의 주소를 물었으나 입양인의 개인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며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다행히 연락이 닿은 양부모가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 그의 사연을 듣고 유해를 받기로 해 김상필은 다시 미국으로 갈 수 있었다. 그의 비극은 입양된 국가의 시민권을 받지 못한 수만 명 입양인 비극 중 하나에 불과할 수도 있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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