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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현대문학>이라는 문예지가 있다. 1955년 창간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월간 순수문예지다. 그런데 최근 이 문예지가 마치 70년대 유신 시대로 돌아가는 행태를 보여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문제는 9월에 시작됐다. 현대문학에 박근혜 대통령이 1990년대 쓴 수필 4편이 수록됐다. 박 대통령의 수필이 실릴 수야 있다. 여러 권의 수필집을 낸 박 대통령은 1994년 수필가로 한국문인협회에 가입해 지금도 회원으로 있다. 그런데 함께 실린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의 에세이 비평이 낯뜨거운 '박비어천가'를 불러 문제가 됐다. 그는 박 대통령의 에세이가 <몽테뉴와 베이컨 수필의 전통을 잇는다>고 했고 <우리들의 삶에 등불이 되는 아포리즘들이 가득한,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진주와도 같은 작품>이라 했다. 비평을 쓴 이 교수는 피천득의 수필을 평가절하한 적이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수필은 <우리 문단과 독자들이 그의 수필을 멀리한다면 너무나 큰 손실>이라고 했다. 이어 현대문학은 편집후기에 <절제된 언어로 사유하는 아름다움의 깊이를 보여주는 문인 한 개인을 넘어, 한 나라의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큰 기쁨이다. 에세이 문학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가지고 쓴 이 비평이 한국 에세이 문학의 재발견과 더불어 문학을 보는 진정한 시선 확장에 기여될 것임을 기대한다>고 했다. 그리고 수필과 비평의 게재가 작가(박근혜 대통령)의 동의 하에 이뤄졌다고 했다. 박 대통령도 자신이 몽테뉴와 베이컨에 견주는 수필가라는 과한(?) 칭송을 봤다는 말이다.

그 후 '박비어천가'가 낯부끄러웠던 편집위원들이 '박비어천가'를 수록한 데 대한 사과문을 싣자고 했으나 잡지사 주간이 받아들이지 않아 편집위원이 사퇴하는 일이 있었다. 대통령 글을 찬양하는 글은 9월호에 실렸지만 11월호에 그 글을 비판하는 글은 실리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소설을 연재하기로 했던 작가들의 작품이 줄줄이 연재 거부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제하 작가의 '일어나라, 삼손'은 정치 얘기가 아니다. 한국으로 귀화한 선교사의 이야기인데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박정희 유신’과 ‘87년 6월 항쟁’이라는 말이 들어갔다고 거부당한 것이다. 단 두 단어를 갖고 원로 작가의 글을 정치적이라 봤고 무지로 재단한 것이다. 참고로 설명하면 이제하 씨는 정치소설을 쓰는 작가가 아니다. 민중문학이 창궐하던 1980년대에도 단 한 편도 그런 글을 쓴 적이 없다.

서정인 작가의 '바간의 꿈'이란 장편 연재도 박정희 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중단시켰다. 등장인물들이 이승만부터 노무현까지 역대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화가 나오는데 ‘박정희가 계집을 끼고 술 마시다가 총 맞아 죽었다’는 발언이 나오자 현대문학의 주간이 수정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권위주의 시대로 돌아가는 유신 복고의 모습이 사회 여러 분야에서 보이는데 이제 문예지조차 어둡고 암울했던 그 시절로 스스로 회귀하고 있다. 대통령이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알아서 그러는 건지 "표현의 자유는 무슨, 개뿔..."이라는 외부 압력이 있는지 내막은 몰라도... 아예 유신 복고를 노래하라는 소리로 들린다.

유신, 한때 모든 것을 집어삼켰던 그 단어가 오늘 되살아나 이제 문학의 자존심까지 처참히 훼손하고 있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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