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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인종차별 광고의 모호함에 대해

hherald 2013.09.02 18:32 조회 수 : 2885



이런 광고가 있다. 어린 소녀가 높은 탑을 올려보며 울고 있다. 흑인 청년이 다가와 왜 우느냐고 물으니 탑 꼭대기를 손으로 가리키는데 그곳에 노란 풍선이 걸려 있다. 흑인 청년이 힘들게 높은 탑에 올라가 풍선을 갖고 내려온다. 풍선을 소녀에게 건네려는 순간 소녀의 어머니가 나타나 흑인을 향해 소리치며 아이를 데려간다. 마치 치한을 대하듯. 풀이 죽은 청년이 풍선을 갖고 힘없이 집으로 돌아온다. 그의 방에는 비슷한 풍선이 수없이 많다. 그가 검다는 이유로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흠씬 풍긴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반전이 나온다. 흑인 청년의 방에 있는 침대가 마치 칫솔처럼 생겼다. 청년이 그 침대에 눕고 침대만 확대된 화면에는 하얀 칫솔모에 얹힌 검은 치약의 모습이다. 자막은 "Black Herbal Toothpaste ( 약초 성분의 검은색 치약 정도로 해석?)". 인종차별을 가장해서 주목률을 높인 치약광고다. 

광고에 인종차별적 요소가 있다고 문제가 된 경우는 많다. 바로 지난주에도 던킨도너츠 태국지사의 광고가 흑인을 비하했다는 반발로 중단됐다. 신제품 초콜릿 도넛 광고에 있는 <얼굴과 목 부분을 검게 칠한 여성 모델이 한 입 베어 문 초콜릿 도넛을 들고 있는 모습>이  "기괴하고 인종차별적"이며 <모델이 분홍색 입술에 1950년대 서양에서 유행하던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어 그 당시 전형적인 흑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는 국제인권감시단체의 비판이다.

광고를 일부러 인종차별적으로 만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갈색 아이를 세탁비누로 씻기니 백인 아이가 되는 체코의 세제광고처럼 개념 없는 광고는 극히 드물다. 처음 광고를 만든 의도와 달리 인종차별의 느낌을 받았다는 반응이 나오면 여론이 기울고 마치 그렇게 의도한 것처럼 비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탈리아 의류회사 베네통처럼 이슈가 되는 것을 일부러 광고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인종차별 논란의 광고는 베네통을 빼고 얘기할 수 없다. 몇 개를 예로 보자. 베네통 광고에는 설명이 없다. <흑인과 백인이 같은 수갑을 차고 있는 모습>의 광고, 모든 인종이 하나로 묶여 있다는 뜻이라지만 흑인은 뭘 해도 백인에게 묶여 있다로 해석됐다. <백인 엄마의 손과 흑인 갓난아이의 손>. 손의 크기로 백인이 우월하다는 것을 표현했다고 비난. <혀를 내민 익살스러운 세 어린아이의 사진>. 백인이 가운데 서 있어서 백인의 기준에서 황인종과 흑인종이 나뉜다는 백인의 인식을 표현했다고. 여기까지는 그래도 인식의 차이라 할 수 있는데 베네통의 결정적인 광고는 <백인 아이와 흑인 아이가 서로 안고 있는 사진>이다. 그런데 백인아이는 천사 분장, 흑인 아이는 악마 분장, 백인 아이는 웃고 있는데 흑인 아이는 무표정하다. 말이 나올 수밖에. 

비누회사 도브도 <검은 피부를 하얗게>라고 광고했다가 혼났다. 광고에는 흑인, 라틴계, 백인 등 세 여성이 목욕 수건을 걸치고 서 있는데 흑인 여성 뒤에 'before'  금발의 백인 여성 뒤에 'after'라고 적었다. 그리고 작은 글씨로 <도브 바디와쉬는 흑인 여성에서 라틴계 여성으로, 백인여성으로 변하게 한다>라고 했다. 무개념의 광고로 비난받았다. 

이런 광고가 있다. 낙타를 끌고 가는 목이 마른 아랍인이 거대한 코카콜라 병을 보고 기뻐하는 순간 말을 탄 카우보이들과 오토바이를 탄 악당들이 아랍인을 앞서서 코카콜라 병에 도착하는 내용의 광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광고는 1초당 1억 원의 미국 수퍼볼에 나갈 예정인데 아랍인을 전근대적으로 그려놓은 인종차별의 광고라고 생각되면 못내보냅니다. 실화입니다. 기회가 되면 생각을 한번 나눠보지요.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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