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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묘비명 단상

hherald 2012.11.05 21:08 조회 수 : 5895



개그우먼이자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인 김미화 씨가 자전적 에세이를 냈는데 그 제목이 <웃기고 자빠졌네>였다. 김 씨는 책 제목이 바로 자신의 묘비명이라 했다. 웃기다가 자빠지면 그것처럼 좋은 게 어디 있느냐며 자신은 무대에서 웃기다 자빠질 것이라고 했다. 책의 제목으로도, 묘비명으로 봐도 그에 걸맞게 압권이다.

묘비명은 말 그대로 인생에 대한 가장 함축적인 말이 아닐까. 죽은 이를 추억하게 하거나 남은 자를 위로하는 짧은 묘비명은 함축된 말로 자신의 인생을 노래한다. 묘비명은 자신이 직접 쓴 것도 있고 사후에 지인이 쓴 것도 있지만 죽은 이가 남은 이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를 표현하는 것은 같다.

인구에 회자하는 유명한 묘비명은 심오한 말로 진한 감동을 주는 것이 많지만 김미화 씨처럼 해학으로 승화해 또 다른 감동을 불러오는 것도 많다. 가장 유명한 것으로 꼽히는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어영부영하더니 내 이럴 줄 알았다>인데 약간 오역이라는 뒷말이 있지만 '오래 살면 결국 죽는다'라는 진실을 특유의 풍자적 표현으로 말한 것은 맞다. 생전에 '걸레 스님'으로 불리던 중광 스님은 <에이 괜히 왔다 간다>라고 했다. 지금도 해석이 분분한 이 말은 속세가 아닌 자신을 겨냥한 냉정함이었을 것으로 후세에서는 그냥 어림짐작한다. 영국의코미디언 스파이크 밀리건의 묘비명은 <내가 몸이 아프다고 그랬잖아!>. 밀리건 묘비의 글은 영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묘비명으로 뽑힌 바 있다.

<일어나지 못해 미안합니다>가 헤밍웨이의 묘비명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은 아니다. 아주 예의 발랐던 어떤 사람(?)의 묘비명이 와전됐을 것이라고 한다. 하긴 102살에 죽은 이의 묘비명으로 <착한 사람은 일찍 죽는다>라는 것도 있다. 고인을 비꼬는 건지 원. 

통일교 창시자 문선명 목사의 죽음이 보도된 날 미국의 한 코미디언은 문 목사의 묘비에 <인생살이에서 확실한 건 오직 죽음과 세금뿐이더라>라고 새겨질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1970년대 미국에 통일교가 처음 상륙했을 때 미국 기독교계는 통일교의 교세 확산을 우려해 문 목사의 약점을 추적, 탈세로 18개월 징역을 살게 한 바 있다. 이를 빗대 코미디언이 농담을 한 것인데 이 말은 벤저민 후랭클린의 명언에서 따온 것이다.

생전에 세상과 타협하지 못했던 천재 미켈란젤로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는 것만이 진실로 내가 원하는 것이라오. 그러니 제발 깨우지 말아다오, 목소리를 낮춰다오>라며 세상과 단절된 안식을 원하는 묘비명을 남겼다. 비슷한 것으로 예언자인 노스트라다무스의 묘비명은 < 후세 사람들이여, 그의 휴식을 방해하지 마시오>다.

살아서 묘비명을 고민한다는 것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며 이는 어떻게 잘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묘비명에 부끄러운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면 역시 잘살아야 한다는 말인데 김미화 씨처럼 웃기고 자빠질 정도로 제 할 일을 하면서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뜻일 게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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