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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지난 6월, 95세의 노목사가 눈물로 회개했다.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준 것이 최대의 실수라고 회개했다. 김창인 충현교회 원로목사가 아들에게 담임 목사직을 물려 준 자신의 결정을 공개적으로 회개한 뒤 개신교 전반에 세습에 대한 반성과 자정의 바람이 불었다. 급기야 기독교대한감리회가 교회법으로 교회 세습을 금지하는 '세습금지법'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회장을 역임한 왕성교회 길자연 목사가 후임 담임 목사로 자기 아들인 길요나 목사를 선출해 세습하기로 결정했다. 모처럼 분 개신교의 자정 바람에 제대로 찬물을 끼얹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앞서 교회세습을 회개한 김창인 충현교회 원로목사나 이번에 자식에게 교회를 세습한 왕성교회 길자연 목사 모두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소속이다.

한기총은 보수 개신교계 대표기구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함께 개신교계 양대 기구를 이뤘다. 길자연 목사가 회장으로 당선되던 2010년 66개 교단과 19개 단체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예장백석, 예장통합 등의 교단과 구호단체 월드비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등의 단체가 이미 탈퇴했고 기독교하나님의성회, 예수교성결회, 기독교성결회, 기독교침례회,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등 여러 교단의 탈퇴가 줄을 잇고 있다. 

개신교는 교단의 대표들이 모여 총회를 구성한다. 총회를 통해 교단의 일을 결정한다. 지금 총회 중이거나 총회가 곧 열릴 교단은 이번 총회에서 한기총 탈퇴 여부를 결정한다. 각 교단의 총회가 끝나면 한기총을 탈퇴하는 교단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그럼 왜 이렇게 많은 교단과 단체가 탈퇴하는가. 바로 길자연 목사가 회장으로 당선된 2010년 선거가 첫 문제였다. 한기총의 도덕성에 큰 상처를 낸 돈 선거가 문제였다. 한기총 선거를 '십당오락'(10억 뿌리면 당선되고 5억 뿌리면 떨어진다)이라고 했다. 결국, 대표회장 직무정지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한기총을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기다려도 나아질 기미가 없자 한기총 탈퇴가 줄을 이은 것이다. 물론 한기총 내 교단 간 갈등도 탈퇴의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큰 요인은 개신교 내에 일고 있는 개혁의 요구다. 

지금 한기총 집행부는 예장합동이 주축을 이룬다. 집행부와 이견을 보인 30여 개 교단은 결국 '한기총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데 이어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을 출범시켰다. 개신교 주요 10개 교단 중 예장합동을 제외한 9개 교단은 한교연에 가입했다. 한기총은 따라서 예장합동의 단독 기구인 것처럼 됐다.

'한기총 해체를 위한 기독인 네트워크'가 종교개혁 494돌을 맞아  '한기총이 해체되어야 하는 95가지 이유'를 발표했다. 95가지 이유라고 한 것은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에서 따온 것이다. 이 단체는 △성경적은 고사하고 세상의 도덕적 기준에도 못 미치는 금권 선거를 해 돈으로 자리를 사고 팔았고 △하나님을 빙자하여 세속권력과 이권을 탐하며 △이단 확산 막는 게 목적이라면서 이단으로 지목한 교단을 받아들이고 △한기총 때문에 도대체 전도가 안 되기 때문 등을 이유로 들었다.

한국교회 위상이 땅에 떨어진 현실을 인정한 예장통합의 손달익 총회장은 이런 설교를 했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적은 부패한 정치인도, 탐욕에 눈먼 기업인도, 사이비 이단 집단도, 타 종교인도 아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것들이 적이다>. 모두가 도덕성 회복을 향해 나설 때 뒤로 뛰는 적이 몇 있고, 그것도 대표나 지도자라고 버티고 있으니 세상사든 종교든 이런 불편한 진실은 꼭 하나씩 있나보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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