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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침어낙안浸魚落雁 폐월수화閉月羞花. 수준급 사자성어로 보이지만 실은 중국에서 예쁜 여자를 칭할 때 간혹 쓰는 말인데 중국 고대 사대미인으로 칭하는 서시, 왕소군, 초선, 양옥환(양귀비)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침어 서시, 낙안 왕소군이라 불린다. 이들이 이런 칭호를 얻은 데는 그마다 고사가 있는데 중국답게 뻥이 세다. 침어浸魚 서시는 물고기가 가라 앉았다는 뜻인데 서시가 냇가에서 수건을 씻는 모습을 본 물고기가 그 미모에 놀라 헤엄치는 것을 잊고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낙안落雁은 왕소군의 비파소리에 기러기들이 날갯짓을 멈추고 떨어졌다, 폐월閉月은 초선이 달을 쳐다보면 달이 그 미모에 움츠려져 구름 뒤로 숨었다, 수화羞花는 양옥환이 화원에서 꽃을 만지면 꽃이 부끄러워 잎을 말아 올렸다, 라는 식이다. 동물이나 식물도 그들을 예쁘게 봤다는 최고의 찬사다. 원래 여자가 매우 예쁘면 부정적 표현이 많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이나 경성지미傾城之美라는 표현을 써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또는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부정적 의미가 많다. (사실 이 미인들 대부분이 왕조의 몰락에 직접적 원인이 됐다.) 그래서 침어낙안 폐월수화가 뻥이지만 최고의 찬사가 됐고 특히 긍정적인 표현이란 데 더 의미가 있다. 

 

 

뻔한 질문이지만 만약 오늘날 어느 미인을 보고 새가 떨어졌다고 주장하면 그 여인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인정해줄까, 그 주장하는 이를 미쳤다고 할까, 어느 기획사의 소행인지 우선 의심하고들까. 아니 오히려 오늘날에는 새나 물고기나 꽃이나 달이 예쁘다고 인정하는 미인은 있을지 몰라도 모든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고 인정하는 미인은 없을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와 기준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 최강의 미모는 늘 바뀐다. 물론 이런 걸 선정하는 곳이 그렇다 보니 침어낙안 폐월수화 근처에도 못 가본, 꿈도 못 꿀 백인 여성이 주로 뽑힌다.

 

 

가장 최근에는 할리우드 배우 앰버 허드가 세계 최고 미인으로 뽑혔다. 안 예쁘다는 건 아닌데 인정할 순 없다는 분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수학적 비율 등을 따져 아름다움의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했다며 주관적인 미에 객관성을 주장한다. 황금비율인 파이 1.618을 기준으로 코의 크기, 입술과 코의 비율 및 거리, 이마와 눈썹, 눈썹과 코, 코와 턱의 간격을 따지는 공식을 적용했을 때 앰버 허드가 91.85% 들어맞다고 한다. 91.85%면 거의 최고 수준인지 이 기준에 따라 어딘가 100% 맞는 사람도 있다는 말인지 그 이후는 모르겠다.

 

 

진화심리학은 아름다움의 평가기준이 번식력을 반영하는데 건강한 자손을 많이 낳을 수 있는 외형적 특징을 아름답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미인은 좌우가 맞는 '대칭성', 남성은 남성스럽고 여성은 여성스러운 '성적이형', 평균에 가까이 갈수록 사람들이 더 아름답다고 판단하는 '평균성'을 갖춘 사람이다. 그럼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표본을 향해 베고 자르고 깎고 꿰매야 한다고 유혹하는 성형외과는 문제없는 현상을 문제로 만들어낸 장본인이란 말이 된다.

 

 

미는 주관이다. 침어낙안 폐월수화도 아마도 당시 곁에 있던 이가 그렇다고 추어준 것일 게다. 때마침 구름 뒤로 달이 사라지니 '아이구 얼마나 예뻤으면 달도 숨었구나'하고 짐짓 올려준 것 아닐까. 미인 만드는 칭찬, 돈 안 들고 참 쉽다. '아이고 놀라라. 왜 이리 예뻐졌어?' 그래서 나쁠 거 없잖아.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칭찬하면 미인 되잖아. 미인이라 생각하면 되잖아.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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