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워낙 많이 들은 말인데 독서의 계절이라고는 하지만 책이 가장 안 팔리는 계절이 가을이라고 한다. 그래서 출판업계에서는 가을철 책이 너무 안 팔리니까 사람들이 책을 읽게 하려고 만들어낸 말이라고들 한다.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 것이 최근의 일이 아니다. 한용운 선생의 글에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그것은 무슨 습관이나 제도로서가 아니라, 자연과 인사가 독서에 적의 適宜 (무엇을 하기에 알맞고 마땅하다) 하게 되는 까닭이다.>라는 것이 있다. 자연 현상으로 더운 여름이 지나 서늘한 가을이 되어 책 읽기에 좋고 인사라는 것은 여름에 땀 흘려 일하다 바쁜 일이 다 끝나 몸과 마음이 가을에 조금 편하게 되었으니 책 읽기에 좋다는 뜻이다.
한용운 선생의 글을 보면 역시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규정한 농경문화의 관습을 기준으로 했다. 한해 농사를 마치고 몸과 마음이 좀 편한 상태에다 먹거리도 풍성해 마음의 살도 좀 찌우자는 뜻으로 독서를 권하고 있다. 농경문화가 아니면 나오기 힘든 발상이다. 그래서 딱 떠오르는 사자성어가 등화가친 燈火可親 이다. 중국 당나라 대문호인 한유가 아들에게 책 읽기를 권하면서 지은 시에 나오는 이 말도 가을과 독서를 맺어주는 농경문화의 산물이다.
<남아라면 모름지기 다섯 수레 분의 책을 읽어야 한다>.-두보, <단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안중근, 처럼 책 좀 읽으라는 당부는 동서고금을 통해 많다. 웬만한 위인은 다 독서를 하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 모두 부모님, 선생님에게 그런 당부를 듣고 자랐다. 그런데 독서의 계절인 가을이 돼도 가을 타는 남자들이나 책을 볼까 우리 삶의 형태는 등화가친과는 거리가 멀다.
얼마 전 경향신문이 창간 70주년을 맞아 ‘1945년 이후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을 선정한 바 있는데 <해방전후사의 인식>(1979·한길사), <전환시대의 논리>(1974·창작과비평사), <태백산맥>(1986·한길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문학과지성사), <전태일 평전>(1983·돌베개) 등이 뽑혔다고 한다. 이 책들이 많이 읽히던 시절을 사셨던 분들이 아니라도 간혹 들어본 책들일 것이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전환시대의 논리>, <태백산맥>은 2007년 조사에서도 1-3위를 했으니 시대가 흐르면 나중에는 가히 고전의 반열에 오를 정도다.
지금 당장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망설임 없이 답할 자신이 있는지. 공자는 <사람이란 그 얼굴이나 용맹이나 조상이나 문벌을 가지고 이야기할 것이 아니다. 다만 독서한 학문인이라야 더불어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아버지 뭐 하시노'가 스펙이 아니라 독서가 스펙이라고 공자는 이천 년 전부터 얘기했는데 올가을에는 등화가친의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는 부모가 한 번 돼보는 것도 어떨지. 이제 밤도 길 텐데.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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