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영국산 골뱅이가 가장 많고 품질도 좋으며 맛있다는데 1993년부터 한국에 들어갔다고 한다. 영국의 한인 사회에는 영국산 골뱅이를 한국으로 수출하던 어르신들이 계신다. 한국에서 포장된 골뱅이 깡통에 흔히 자연산 골뱅이라고 자랑하는데 세상 골뱅이는 모두 자연산이란다. 영국 골뱅이가 한국으로 얼마나 많이 갔으면 한때 영국에는 한국에 수출할 골뱅이 가공 공장만 20여 곳이 있었다고. 영국인은 골뱅이를 먹지 않는다. 먹는 나라가 한국, 일본, 프랑스 정도. 그런데 세계 소비량의 80-90%를 한국인이 먹는 거로 알려져 있다.
오늘은 골뱅이가 화두다. 영국 BBC가 한국에서 소비되는 골뱅이에 대해 잘못된 보도를 했다고 한국의 언론이 요 며칠 떠들썩했다. <웨일스에서 잡힌 골뱅이는 한국의 최음제 Whelks caught in Wales are South Korea aphrodisiac>란 제목의 기사. BBC 기사는 브리스톨 해협에서 골뱅이를 수확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영국에서 아시아로 골뱅이가 많이 수출되는데 한국에서 골뱅이가 '최음제'로 사용된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에서는 골뱅이가 있어야 데이트가 완성된다고까지 했는데 그래서 이 기사가 단순한 오역에 그치지 않고 성폭력, 성폭행이 자주 발생하는 한국의 잘못된 데이트 문화를 꼬집은 기사이기도 하다는 평이 있다.
그런데 이 기사에서 말한 것은 최음제가 아니라 ‘정력제’의 의미가 아닐까 하는 해석도 있다. 영국인이 보고 듣기에 골뱅이를 정력에 좋은 음식으로 알았다면 그나마 이 기사가 이해가 될까. 본초강목, 동의보감 등 한방 의학서에서도 골뱅이가 정력 보양식품으로 나와 있으니. 듣기 좋은 말로, 예로부터 그래온 것을 영국인이 재해석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런데 문제가 된 '골뱅이가 데이트의 완성'이라는 말은 '골뱅이'라는 단어의 다른 해석 때문에 진짜 문제가 된 것이다. 골뱅이는 그냥 골뱅이이기도 하지만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여성'을 가리키는 은어다. 술에 취한 여성을 이렇게 부르는 남성에게 있어 여성이 술에 취해 정신을 잃게 만들어야 데이트가 완성된다면 그게 무슨 뜻일까. 여성을 이렇게 대하는 남성이 있다는 것이 이번 영국 골뱅이 기사를 둘러싼 문제에서 진정 되짚어볼 핵심이다.
골뱅이라는 은어의 기원은 경찰이 무전기로 하던 음어에서 비롯됐다. 경찰 무전 음어라고 하는데 꼭 여자만이 아니라 술 취한 사람을 '골뱅이 됐다'라고 부르는 식이었는데 유흥업계로 흘러들어 와서는 나쁘게 왜곡됐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골뱅이(@) 표시된 영수증이 올라와 알려진 내용을 보면 상당수 유흥업소에서는 남성 고객에게 골뱅이, 즉 만취한 여성을 데려다주면 팁을 건네는 행위가 암암리에 이뤄지며 이 영수증은 '골뱅이(@)를 데려다주고 팁으로 얼마를 받았다'는 의미가 된다고 한다. 이런 행위가 상당수 유흥업소에서 널리 이뤄지고 있다면 유흥업소는 분명히 성폭행과 강간 범죄의 소굴이라는 말이다.
여기 술에 취한 여성을 골뱅이라고 부르는 남성이 있다고 하자. 그는 술에 취해 길가에 쓰러진 여성을 보면 저기 '골뱅이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취한 여성을 강간하고는 '골뱅이를 먹었다'고 아주 단순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가 과연 여성을, 술에 취하지 않은 여성이라도 인격적으로 볼 눈높이가 있을까.
인격체를 '골뱅이'라 말하는 남자를 우연히라도 만나게 된다면 골뱅이만도 못하게 대해도 된다. 골뱅이도 과하다. 분명 골뱅이만도 못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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