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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2016년 일본 구마모토, 1980년 광주

hherald 2016.04.18 17:23 조회 수 : 1380

 


미국에서 일어난 가장 큰 지진은 진도 7.9로 1906년 4월 18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했다. 3천 명 이상이 죽었다. 그런데 지진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물건을 훔치다 사살된 사람이 500명이다. 지진이 나자 폭동과 약탈이 잇달았고 4천 명의 군인이 투입됐다.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치안유지대에게 약탈을 하는 범죄자를 보면 즉각 죽여도 된다고 했다. 상점에서 물건을 훔쳐 나오다 사살된 자가 대부분이지만 집에서 자기 물건을 들고나오다 도둑으로 오인받아 죽기도 하고 치안유지대로 투입된 군인이 약탈자로 변하기도 했다.

 

2010년 아이티 지진, 뉴질랜드 지진에서도 어김없이 약탈자들이 등장한다. 파손된 업소에 들어가 물건을 들고나오고 폭동을 일으킨다. 가난과 혼란으로 얼룩진 남미에서 상대적으로 건실한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이룬 선진국이라는 평가로 '남미의 재규어'라 불리는 칠레에서도 2010년 지진 뒤에는 슈퍼마켓에서 화장지와 가전제품을 훔쳐서 달아나는 모습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16년간 피노체트 군사정권의 독재를 겪은 칠레인들은 군대의 개입을 죽기보다 싫어했지만, 워낙 약탈이 심해서 군인들이 도착하자, 약탈을 당하던 주민들이 환호했다고 한다. 세계 언론들은 <지진에 무너진 남미 자부심>이라고 썼다.

 

그런데 다음해 2011년 세계지진사에서 역대 4번째로 강력한 일본의 대지진 발생한다. 세계가 경악한 대지진이 났지만 일본은 무법천지가 되지 않았다. 흔히 지진보다 약탈과 폭력이 더 무섭다고 하는데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는 일본인들의 시민의식은 세계인에게 지진보다 더 큰 충격과 감동을 줬다. 생필품이 부족해도 쇼핑센터에 수백명이 줄을 서서 질서를 지킨고 새치기나 약탈은 전혀 없었다. 필요한 만큼만 구입하지 사재기도 전혀 없었다. 도로는 내려앉았지만 일부 신호등이 남아 있는 곳에선 시민들이 파란불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긴급용으로 우동 10그릇을 가져왔을 때 우동 그릇을 향해 달려들기는 커녕 다른 고객의 허기를 걱정하며 뒤로 뒤로 우동을 돌리는 '양보의 릴레이'가 이어졌다.

 

이번 일본 지진 뒤에도 어김없이 그들의 질서의식과 배려정신이 빛났다. 16만 명 이상이 피난민인데 배급품을 더 달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물을 배급받는데도 300m 넘게 줄 서 두세시간씩 기다려도 새치기하거나 정량보다 더 받아가려는 사람은 없다. 질서 유지 공무원도 없었는데 아예 필요가 없었다. 이런 모습에 우리 언론도 <일본인들은 재난을 당했을 때 절박한 상황 가운데서도 질서의식과 나보다 남을 위하는 배려정신이 더 강해진다. 이것이 바로 일본이 선진국인 이유이기도 하다>고 손을 들었다.

 

자연재해는 아니지만, 위기상황에 약탈이 없었다는 점에서 1980년 광주를 떠올린다. 광주 민주화 운동 때 계엄군이 물러간 당시 광주를 '해방 광주'라고 했는데 시민군은 총을 들고 있었지만, 백화점이나 상점 약탈이 없었다는 점이다. 불탄 건물은 KBS와 MBC 사옥이었다. 워낙 엉터리 보도를 줄창했으니. 1980년 5월 29일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은행지점장이 "금융기관이 안전했다"고 설명하고 중심가 상인이 "피해품이 없다"고 증언한 내용이 나온다. 신군부가 기사 한줄까지 철저히 검열하던 시절에 약탈이 없었다는 기사가 검열을 통과한 것은 약탈이 없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

 

남을 배려하는 2016년 일본 구마모토현 이재민을 얘기하다 1980년 광주 시민군까지 나왔지만 '위기에 저력이ㅝ ㅍ  나온다'는 옛말에 비춰 둘이 전혀 다른 풍경은 아닌듯하다 .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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