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섭의 소설 <열 줌의 흙>에 자신의 배를 쓰레기통이라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 1세대인 노인의 회상에서 나온 표현은 <'배'라는 이름의 내 쓰레기통은 손님들이 남기고 간 음식의 소유주다>, 대충 이런 식이다. 그러니까 한국전쟁 기간인 1951년 부산의 미군 부대 주변 식당에서 나온 음식쓰레기 버리는 곳을 맴돌던 수백 명의 어린이 중 하나였던 소설 속 노인은 사람들이 남긴 음식을 먹던 어린 시절 자신의 배를 쓰레기통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당시 일반적인 쓰레기통은 쇠로 만들어 은박을 입힌 것이었는데 자신의 배 쓰레기통은 <음식물을 소화시킬 수 있으니> 일반 쓰레기통보다 훨씬 고급이라고, 그런데 한 가지 단점은 소화가 너무 빨리 잘되는 것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열 줌의 흙>은 민족과 죽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끼게 하는 주요섭의 말년작으로 평가받는데 유독 쓰레기통 표현 부분에서는 전쟁고아의 설움이 기슬픔, 웃프다, 하는 느낌으로 온다.
쓰레기통이 얼마 전 화제가 됐다. 할리우드의 스타라는 킴 카다시안이 집 정원에 둔 재활용 쓰레기통 2개를 SNS에 공개했는데 루이뷔통 로고가 많이 박혀 있었는데, 그러니까 루이뷔통 쓰레기통을 사용한다는 걸 자랑하려고 올린 듯하다. 그녀의 일상적 행태를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공인으로서의 책무, 위화감, 이런 걸 의식할 수준이 못 되는 그녀의 쓰레기통 사진은 단순히 관심을 끌기 위한 거였는데 이에 네티즌들은 가격이 궁금하다며 소위 낚였다. 그녀가 자랑한 쓰레기통과 똑같은 건 없는데 루이비통 미니 쓰레기통이 이베이에서 3천파운드(약 440만 원)에 판매된다고, 그렇게 추측하면 하나에 천만 원은 할 거라고 얘기들 한다.
이런 경우, 쓰레기통 하나도 아무 것이나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보는 이도 있긴 한데, 쓰레기통 하나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나 같은 범인과는 워낙 동떨어진 얘기고 현실감이 없어 부러워해야 하나, 마나, 모르겠다.
비싼 쓰레기통 하니까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명품 쓰레기통. 청와대 구입 물품 중 독신인 박 전 대통령이 침대를 너무 많아 사 누가 사용한 거냐고 추궁하기도 했는데 호두나무로 깎아 만든 90만 원대 휴지통이 나와 화제가 됐다. 헌법재판소 파면 결정 후 박 전 대통령은 이 휴지통을 두고 사저로 옮겼다. 90만 원대의 쓰레기통은 어떻게 됐을까. 국가 예산으로 구입했기에 사용 기한이 9년이다. 중고로 판매할 수 없다. 청와대를 완전 개방하는 시점에 ‘국정농단 반면교사’로 전시했으면 한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어떻게 됐을까, 궁금하네.
쓰레기통의 명품은 단연 덴마크의 'Vipp'다. 미국 현대미술박물관에 영구 소장된 Vipp는 명품 페달 휴지통으로 유명한데 밟으면 뚜껑이 열리는 이 디자인은 헤어 디자이너인 아내를 위해 특별히 만든 것이었다. 사랑으로 최고의 쓰레기통이 탄생한 것이다. Vipp의 지론은 <좋은 디자인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 자신감이 부럽다.
쓰레기 같은 인물과 쓰레기통 같은 인물은 천양지차다. 쓰레기통 주변은 가장 깨끗하기 때문에. 그래서 세상은 쓰레기통 하나를 두고도 제대로 쓰는 이, 않는 이가 있다고들 한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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