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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프랑스 시사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는 <도 넘은 이슬람 비하인가, 보호해야 할 표현의 자유인가>의 논란을 다시 불러왔다. 서구 사회 입장에서는 지금 테러의 희생자가 돼 <샤를리 에브도>를 옹호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지만 사실 이 잡지는 평소 서구 주류사회에서는 참 못마땅한 존재였다. 교황청, 미국 백악관, 프랑스 외교부 등이 만평이 불필요할 만큼 도발적이라고 비난을 했었다.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에 등장하는 프랑스 정치인은 모두 주색에 빠진 한량이고, 교황도 여자친구와 유희에 빠진 인물로 묘사된다. <샤를리 에브도>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13차례나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당했다는 것은 이 잡지가 서구 사회에도 불편한 존재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잡지는 테러 이후 잘 팔리고 있다. 테러 이전에 6만 부 발행했는데 최신호는 700만 부가 매진됐다. 그런데 테러를 당한 뒤 처음으로 발행한 최신호 표지에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평이 또 나왔다. '다 용서한다'는 제목의 만평에는 무함마드가 눈물을 흘리며 "나는 샤를리다"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성전으로 죽은 무슬림은 천국에서 처녀 70명을 상으로 받는다는 무슬림 속설을 토대로 테러범을 조롱하는 만평도 있다. 천국에 도착한 테러범들이 "70명의 처녀는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샤를리 팀(테러 희생자들)과 있다, 루저들아"라고 답한다. 천국에 오니 성전을 치른 테러범이 아니라 무슬림을 만평으로 비하한 샤를리 팀이 70명의 처녀를 차지하고 있더라는 식으로 조롱한다.

표현의 자유? 이 정도면 이란 외무부의 성명처럼 <무슬림을 모욕해 상처를 주는 도발적인 행위>로 보이기도 한다.과연 이 만평이 <사람들의 평화로운 공존에 이바지>할 수 있을까. <무슬림의 서구사회 융합>에 도움이 될까. 실제 이런 만평으로 다시 불필요한 도발이 일어나자 <나는 샤를리다>에서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서구 사회, 특히 프랑스는 이슬람을 모욕하는 것에는 표현의 자유를 주면서 유대인에 대한 풍자와 조롱에 대해서는 철퇴를 내린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표현의 자유도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는 이중성이 있어 문제다. 

프랑스의 유명 코미디언이 페이스북에 <적어도 나는 오늘 밤 '샤를리 쿨리발리'처럼 느껴진다>고 썼다. <나는 샤를리다>를 패러디해 파리의 유대인 식료품점에서 유대인 4명을 쏴 죽인 아메디 쿨리발리의 이름을 섞어 썼다. 당장 프랑스 총리가 <표현의 자유를 반유대주의, 인종차별,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것과 혼동한다>고 비난했다. 코미디언은 "난 사람들을 웃기려고 하는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샤를리 에브도>도 무함마드를 나체로 묘사하고 무슬림이 항의하자 '풍자일 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예언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것은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지만, 유대인을 폄하한 그는 중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테러에 희생된 <샤를리 에브도>의 편집장 스테판 샤르보니에는 공교롭게도 생전에 표현의 자유를 공정하게 하라는 주문을 정부에 한 바 있다. 자신들의 만평에 항의하는 무슬림들의 시위를 보장하라고 정부에 스스로 촉구한 바 있다. 2012년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나체로 묘사한 만화를 게재해 무슬림들의 거센 시위를 촉발했는데 프랑스 정부가 시위를 봉쇄하려 하자 그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표현할 권리가 있고, 그들도 그들 자신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며 시위를 허용하라고 했다.

국가 간 이주는 이제 일반화된 시대. 한 영토 안에 민족, 종교 간 갈등이 일어나고 소외된 계층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가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는 이중 잣대를 갖고 있다면? 그리보면 <샤를리 에브도> 테러는 결코 남 일이 아니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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