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텔레비전에서는 못 봤지만 한국에서 김영한 민정수석의 항명은 전 국민에게 생중계됐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국회에 출석하도록 지시했는데 그는 사표를 던지고 나오지 않았다. 이쯤 되면 김기춘 비서실장의 리더십? 낯 뜨거워진 거다. 그래서 보수 언론에서도 김기춘 비서실장을 향한 정치 '원로'의 '콩가루' 책임론이 나왔다. '원로'와 '콩가루'. 맞는 말일까.
김기춘 비서실장은 청와대 비서실 시무식에서 <기강이 문란한 정부조직이나 집단은 효율적으로 일할 수 없다>고 했다. 기강이 문란한 조직이나 집단이 바로 청와대 비서실임을 보여준 항명사태가 시무식 며칠 뒤에 발생했다. 말 그대로 영도 서지 않고 있는 일이 생기다 보니 <콩가루 청와대>라고 조롱당한다. 청와대 참모들을 지휘하는 최고 책임자의 지시를 불이행했으니 콩가루 이미지 제대로 보여줬고 사표를 던졌으니 대통령 국정 수행에까지 차질이 불가피한 콩가루 청와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럼 누가 더 문제로 보이는지. 김기춘 비서실장인가, 김영한 민정수석인가. 거슬러 올라가면 검찰 선후배인 이들이 만든 콩가루 이미지의 진짜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 실루엣이 보이는지.
콩가루. 가정에 문제가 있어 풍파가 끊이지 않는 집안을 가리켜 콩가루 집안이라고들 한다. 콩가루는 <어떠한 물건이 부서져서 가루가 다 되었을 때 이르는 말>이다. 그럼 밀가루, 쌀가루도 있는데 왜 하필 콩가루? 콩이란 것이 참 특이하게도 가루는 도저히 뭉쳐지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콩가루 집안은 일반적으로 망한 집안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집안 식구들이 따로따로 노는 집안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로따로 노는 집안. 많이 보는 풍경 아닌가. 나는 개인적 견해지만 콩가루 집단이나 콩가루 사회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원로답지 않은 이들이 원로의 특권을 누리며 원로의 행세를 하는 진정한 원로의 부재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한인사회 역시나.
물론 '원로'는 있다. 사전적 의미로 어떤 분야에 오래 종사하여 나이와 공로가 많고 덕망이 높은 사람을 말한다. 그래 맞다. 그런데 지금 한인사회의 원로에 대한 기준은 무엇인가. 전임 한인회장? 만약 그렇다면 한인사회에 오래 살았고 나이와 공로가 많다는 점이다. 그러면 그에 준하는 이들도 많다. 한인사회에 오래 살았고 나이와 공로가 많은 이들. 이들이 원로다. 덕망이 있으면 더더욱 원로가 되고. 한인회장들을 기준으로 덕망의 평가는 호불호가 다르니 논외로 하자.
콩가루를 다스리는 데는 원로가 필요하다. 전임 한인회장들만이 아니라 그에 준하는 이들을 망라한 원로들. 우리가 아는 그 어른들이 모인 진정한 원로회. 그런 모임의 탄생을 독려해야 한다. 그곳에서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혜안을 얻어와야 한다. 청와대든 한인사회든 콩가루가 되는 것은 원인이 있다. 원로 아닌 자가 원로인척하고 있거나 진정한 원로가 나설 길이 막혀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나. 원로와 콩가루. 고국에도, 여기에도.
헤럴드 김 종백 12/jan/ 2015 6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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