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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중동 기독교인들의 슬픈 눈치보기

hherald 2015.02.23 19:22 조회 수 : 933

 


얼마 전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리비아에서 억류 중이던 이집트 콥트 정교회 교도 21명을 참수했다. IS는 '십자가의 나라에 보내는 피로 서명된 메시지'라는 제목의 동영상에서 콥트교도들에게 탄압받은 모슬렘 여성에 대한 복수를 위해 21명을 살해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며칠 전 영국의 콥트교 총주교가 자기 교도를 참수한 IS대원을 <이미 용서했다>다고 했다. 정확히는 <극악무도한 그들의 행위는 용서하지 않았지만 참수한 사람들은 진심으로 용서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희생됐지만 중동의 기독교도와 야지디족 등 목전의 위험에 처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을 이끌어냈다>고 했다. 글쎄. 콥트교 지도자의 용서와 납치돼 참수당한 콥트교도의 죽음이 그런 의미로 승화될 수 있을까.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

콥트교도를 납치해 참수한 IS가 말한 <탄압받은 모슬렘 여성>이란 2004년과 2010년 이슬람교 개종 문제로 화제를 모은 이집트 여성 와파 콘스탄틴과 카밀리아 셰하타를 말한다. 이 여성들은 며칠 실종됐다가 귀가했다. 콥트교도들은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강제로 개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콥트교 목사의 아내인 와파 콘스탄틴은 귀가 후 수녀원에 보내졌다. 그러자 이슬람교도들은 여성이 자발적으로 개종했는데 콥트교도들이 억지로 억류한다고 비난했다. 어쨌든 IS는 콥트교도 21명을 집단 참수하면서 <모슬렘으로 개종하려는 여성을 박해했다>는 이유를 댔다.

중동의 기독교인은 철저히 소수다. 지금도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20세기 초까지 중동 인구의 약 20% 정도였지만 지금은 2-5%에 불과하다. 기독교가 태동한 곳이 중동인데 2020년에는 신자가 반으로 줄 것으로 예측된다. 낮은 출산율보다 더 심한 '소외와 박해' 때문이다.

참수당한 이집트 콥트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공동체들 가운데 하나로 중동에서 가장 많은 기독교 인구를 가지고 있다. 8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집트 인구가 8,000만이니까 약 10% 정도. 다른 곳에 비하면 엄청나다. 그런데도 이집트 기독교인의 불안한 삶은 전체 중동 기독교인의 불안한 삶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이슬람 지역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종교가 주어진다.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의 종교가 자신의 종교가 된다. 주민등록, 호적, 공문서에 종교가 기록된다. 소수자인 기독교는 차별받는다. 기독교인은 모슬렘으로 개종이 가능하나 모슬렘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모슬렘 남자와 기독교 여자의 결혼은 가능하나 기독교 남자와 모슬렘 여자의 결혼은 불가능하다. 이런 식의 차별이 평생 따라다닌다. 그런데 완전 이슬람 국가가 등장하면 이런 차별을 넘어 기독교인이 몰살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다.

그래서 콥트교도 이슬람 급진주의자들과 독재정권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존재다. 중동의 기독교인은 기독교 공동체가 중동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세속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것뿐이며, 그래서 이슬람 신정 국가보다는 독재 정권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중동의 기독교도가 자국의 독재정권을 지지하거나 암묵적인 동조를 보내는 이유가 슬프게도 '살아남기 위해서'다.

자기 교도를 참수한 IS대원을 <이미 용서했다>는 콥트교도 지도자의 넓은 의미의 사랑도 왠지 슬퍼보이는 건 중동 기독교인들의 슬픈 눈치보기를 함께 떠올렸기 때문일까.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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