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말기인 1918~20년에 발병해 1차대전 사망자(약 3천만 명)보다 더 많은 희생자(최대 1억 명)를 낸 ‘스페인독감’은 미국에서 처음 발병자를 발견했고 질병을 알았으니 ‘미국 독감’이라고 해야 옳은데 ‘스페인독감’이라고 부른다. 전쟁에 참전한 국가들은 이 병을 숨기려 모두 쉬쉬했고 보도검열로 언론이 다루지 않았지만, 당시 중립국이라 이런 점에서 자유로운 스페인 언론이 이 신종 바이러스를 깊이 다루고 진실을 보도해 ‘스페인독감’으로 불린다. 전염병 문제를 덮고 쉬쉬하려는 불투명한 대응이 전염병을 더 키우고 확산시킨 전례로 꼽힌다.
2014년 서아프리카의 기니에서 첫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자가 발생한다. 에볼라의 치사율은 약 41%로 말 그대로 치명적이었고 급기야 유럽과 미국에까지 뻗어갔다. 전 세계가 에볼라에 대한 극도의 공포심으로 '피어볼라(Fear-Ebola)'라는 말이 만들어지고 일종의 신드롬이 발생한다. 미국 내 첫 에볼라 감염자가 라이베리아 출신 남성으로 알려지자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전염병의 피해자를 전염병을 옮기는 가해자로 인식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비이성적인 집단 공포였다. 심지어 에볼라가 창궐한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했던 의료진까지 비난하는 분위기로 흐르자 오바마 대통령은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 에볼라에 걸렸다 회복한 간호사를 백악관으로 초빙해 포옹하는 모습을 모든 미국인에게 보여줬다.
2015년 메르스가 우리나라를 강타해 ‘피어르스(Fear - MERS)’ 라는 공포로 감쌌다. 모르는 병에 대한 두려움이 컸지만 사실 메르스 공포는 부정확한 정보, 즉 가짜뉴스에 의해 부풀려진 공포가 더 큰 부분을 차지했다. 어느 병원에서 감염자가 발생했다, 의심 환자가 격리치료를 받고 있다, 라는 식의 가짜뉴스는 지목된 병원을 힘들게 하고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을 힘들게 했다. 병에 대한 공포를 부채질한 가짜뉴스는 급기야 비이성적 차별을 불렀다. 메르스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인의 자녀를 학교에 못 오게 막는 비이성적 차별까지 발생했다.
무슨 기시감인가. 메르스 사태 당시 한국과 한국 의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이번 뉴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지금 우리 가운데 생성된 ‘중국인 포비아’나 중국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공포는 진짜 데자뷔 느낌이다.
흑사병이나 스페인 독감처럼 과거 세계를 휩쓴 전염병이 알려준 교훈은 병을 쉬쉬하고 감출수록 병은 숨어서 더 퍼지고 환자를 비난할수록 환자는 더 숨어들어서 방역이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환자는 병의 피해자일뿐 결코 가해자가 아니다. 환자를 비난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병을 더 감추게 된다.
다소 억지스러울지 모르지만 이렇게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결핵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2,000여 명,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 역시 2,000여 명인데 메르스는 38명이 사망했고 '우한결핵'이라고 우리가 지금 두려워하는 뉴코로나바이러스로인한 국내 사망자는 아직 한 명도 없다. 물론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될 수 있어 무섭지만 우리는 병과 싸워야지 병에 의한 피해자와 싸울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차라리 마스크 꼭꼭 챙겨 쓰고 손 잘 씻고 기침할 때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는 예절을 지키고 쓸데없는 가짜뉴스를 믿고 퍼 나르는 이들을 막고 나무라는 자세로 지금은 병과 싸우는 우리가 돼야 한다.
헤럴드 김 종백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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