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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소뿔, 뽑아 말아?

hherald 2018.11.26 17:15 조회 수 : 3133

 

스위스에서 소뿔을 뽑느냐 마느냐를 두고 국민투표를 한다. 스위스의 어느 농부가 소뿔을 그대로 두자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해 '가축의 존엄성'이라는 안건으로 국민투표에 부쳐진 것이다. 법안에는 소뿔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농부에게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이 들어 있어 예산 문제로 국민투표에 올랐다. '뿔을 제거한다면 소들은 슬퍼할 것이다'라는 농부의 호소에 스위스 국민들은 투표로 과연 어떤 대답을 할까. 

 

우리 속담에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소만 뿔이 있는 게 아니고 다른 동물도 뿔이 있는데 왜 하필 소뿔을 말했을까. 소는 농경사회에 아주 중요한 동물이다. 옥수수가 신의 작물이라면 신의 가축은 소였다. 이때는 동물과 같이 생활하는데 뿔이 달린 대표 동물이 소다. 뿔이 있는 동물과 항상 같이 지내려면 당연히 위험하다. 특히 소가 여러 마리 있으면 소는 서열 다툼이 강한 동물이라 서열을 정하려 잘 싸우니 자기들끼리도 위험하다. 그래서 소뿔을 제거하는 것이다. 뿔을 제거한 소는 같이 생활하기 안전하고 소의 성질도 유순해진다.

 

그럼 왜 '단김에' 뺄까. 쇠가 달아 뜨거운 김이 올라올 때 빼는 것은 <어떤 일이든지 하려고 생각했거나 또는 한창 열이 올랐을 때 망설이지 말고 곧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말>이라고 풀이하는 경우가 많은데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다른 해석이 있다. 누구 소인지를 알기 쉽게, 또는 자기네 소라는 것을 표시하려 소 엉덩이에 달군 쇠로 지지는데(이것을 소인이라 하는데 오늘날 상표나 특정 상품을 지칭하는 브랜드의 기원이다) 이때 쇠막대가 불에 달았을 때 쇠뿔도 빼라는 뜻이다. 소는 뿔 아랫부분을 지져서 제거한다. 소 엉덩이에 표식을 남기려 쇠를 달궜을 때 소뿔도 빼라는 것으로 이왕 시작한 일이면 비슷한 여러 일을 한 번에 하라는 뜻이다.

 

소뿔을 손 안 대고 제거하는 것은 아마 모든 축산인이 기대하는 꿈일 거다. 그만큼 뿔을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뿔을 없애기는 다 자란 소보다 어린 송아지 때가 쉬워 제각연고를 바르는데 어미 소가 연고를 핥아버린다. 그렇다고 연고를 발랐을 동안만이라도 송아지를 어미 소와 떼어 놓으면 소가 스트레스를 받고 생이별로 울부짖어 난리가 난다. 그래서 비싼 돈을 들여 뿔을 지지고 뽑는데 이런 수고를 없애려 유전자 기술로 뿔 없는 소를 만드는 노력을 한다. 실제로 뿔 없는 젖소가 태어났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런데 뿔 없는 소라고 하니 왠지 소라는 동물이 보여주는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중세시대 독일에서는 농노를 '뿔 없는 소'라고 불렀다고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한 농노를 뿔이 없는 소에 비유했다는 것은 소도 뿔이 없으면 소다움을 상실했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인간의 역사와 기록과 기억에 뿔은 통상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힘을 가진 자를 상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위스 농부가 제안한 법안은 스위스 국민들의 표심으로 소뿔의 운명이 결정난다. 당연한 말이지만 운명의 주인공이며 소뿔의 주인인 소는 이 투표에 참여할 수 없었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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