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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원더우먼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얘기는 매년 있었다. 그런데 매번 그러다 말았다. 누가 원더우먼 역을 맡느냐가 최대 관심사였고 누가 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면 팬들의 반응이 영 시들했다. 그래서 대부분 엎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 만들었다. 6월에 상영된다. 미스 이스라엘 출신 배우 '갈 가돗'이 원더우먼을 맡은 예고편이 지금 돌고 있다. 그런데 자동차를 번쩍 들어 악당을 물리치는 원더우먼의 모습에 사람들이 주목한 곳은 그녀의 겨드랑이. 털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제모된 겨드랑이. 아마존 왕국의 공주로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살았던 그녀가 왜 '겨털'을 제모하느냐는 비난이다. <아름답고, 강하고, 맹렬하고 독립적인 여성이> 영화 속 캐릭터로 나오지만 <겨드랑이 털은 매력적이지 않>다는 <사회가 강요하는 미의 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강조>한다고 비난한다. 제대로 된 원더우먼의 실사 영화는 이번이 처음인데 상영 전에 맛보기로 나온 예고편만으로도 지금 '겨털' 논란이 한창이라 역시 '원더우먼 잔혹사'라 하겠다. 

 

 

원더우먼은 1941년 12월 만화잡지에 처음 등장했다. 올해로 76살의 할머니. 나올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는데 1942년 3월 전미문학심의기구가 원더우먼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이유는 '노출이 심하다'.

원더우먼의 원작자인 윌리엄 몰튼 마스턴은 변호사이자 심리학자였는데 좀 복잡한 캐릭터의 소유자다. 페미니즘에 대해 열린 사고를 지닌 사람이었지만 사생활에서 두 여자와 결혼 생활을 유지한 중혼 관계였다. 그는 세계 최초로 거짓말 탐지기를 만든 발명가이기도 하다. 원더우먼 하면 떠오르는 황금색 올가미를 아시는지. 나도 원더우먼의 황금 밧줄이라며 줄넘기 줄을 휘두르며 흉내를 냈다. 길이가 무한대로 늘어나는 이 올가미에 묶이면 진실만을 말하게 된다는 진실의 올가미. 원작자가 거짓말 탐지기를 만든 사람이라 진실의 올가미가 왜 거짓말 탐지기와 닮았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마스턴이 만든 원더우먼은 당시 많은 폭력적 영웅과는 달리 사랑으로 모든 것을 감싸는 캐릭터였다. 그리고 급진적 페미니스트였다. 당시 만화 에피소드를 보면 우윳값을 폭등시켜 미국 어린이들을 영양 부족으로 내몬 국제 우유 회사에 항의하는 거리 시위를 하고 ‘여자는 일할 필요가 없다’는 남성을 응징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마스턴이 죽은 후 스토리 작가가 바뀌자 원더우먼은 <진보시대의 페미니스트로, 민주주의와 자유와 정의와 여성의 평등한 권리를 위해 싸우는 슈퍼영웅에서 수영복을 입은 비서로 퇴행>한다. 그리고 화려한 악당들과 싸우는 슈퍼맨, 배트맨과 달리 원더우먼의 악당은 빈약해서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어 같은 회사에서 만든 영웅 중에서도 가장 존재감 없는 인물로 추락한다.

 

유엔은 2017년을 ‘여성·소녀 권익 증진의 해’로 선포하고 2016년 10월, 원더우먼을 명예 홍보대사로 지명한다. 1970년대 티브이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 린다 카터 등을 초청해 성대한 임명식을 한다. 그러나 원더우먼은 2개월 만에 명예 홍보대사에서 물러난다. 국제사회 여성인권단체는 물론 유엔 직원들조차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상대로 지명 철회 청원 온라인 캠페인을 했다. 내용은 이렇다. <원더우먼 캐릭터가 맨 처음엔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전사로서 페미니스트 메시지를 대변하려는 의도였을지라도, 현실에서 나타나는 캐릭터는 커다란 가슴에 말이 안 되는 신체 비례를 지닌 백인 여성>에 불과하다며 성적으로 과장된 여성이 유엔의 홍보대사로는 부적절하다는 것이었다.

 

올해 75살의 원더우먼. 선정적인 옷차림에 육감적인 몸매를 지닌 백인 여성 캐릭터. 한편으로는 성폭력 근절과 여성의 전면적인 사회참여 촉진의 상징. 원더우먼의 상표권을 가진 회사는 여전히 그녀가 평화, 정의, 평등을 상징한다고 주장하는데 75년 전 야하다고 지적받고 올해 영화에서 '겨털'로 지적받는 잔혹사는 여전하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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