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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밥 먹고 합시다

hherald 2016.09.26 18:57 조회 수 : 1206

 

밥 먹고 합시다. 말이야 당연하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먹지도 않고 할 일이 뭘까. 오죽하면 금강산 식후경 金剛山 食後景 이란 말도 있을까. 아무리 경치 좋은 금강산에 왔더라도 밥부터 먹어야 한다는데 무슨 중요한 일이라고 배 채우는 것보다 우선 할까. 밥 먹고 합시다. 꽃구경도 식후사 食後事 아닌가.

 

국회도 밥 먹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 국회에서 '밥 먹고 합시다'가 또 나왔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지난 23일 국회 대정부질문 중에 발언대를 점거해서 국무위원들에게 저녁 식사 시간을 줘야 한다며 '밥 먹고 합시다'를 외쳤다. 그는 <국무위원들이 저녁도 못 먹었다. 국무위원들은 식사할 권리도 없느냐>, <국무위원들을 굶기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 국회에 오점을 남기지 마라>, <의회 독재가 벌어지고 있다.>, <30분만이라도 밥 먹게 하라. 오랫동안 확립된 국회 전통에 따라서, 왜 우리가 식사를 못하고 있는가>라고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따지며 '밥 먹고 합시다'를 외쳤다.

 

이날의 '식사 투쟁'을 새누리당 의원들과 국무위원들이 배가 고파서 그랬다고 하면 높은 분들을 너무 형이하학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밥 먹고 합시다'에는 깊은 뜻이 있었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를 앞두고 시간을 끌자는 깊은 뜻이다. 새누리당과 국무위원들은 이날 아침부터 라이언 일병을 살리듯 김재수 장관을 살리려 해임건의안 처리를 방해하는 시간 끌기를 했다. 대정부질문에서 국무위원들도 한없이 늘어지는 장광설 답변으로 시간 끌기에 동참했다. 그리고는 밥때가 되자 밥을 못 먹게 하는 것은 의회 독재라며 밥 먹을 시간을 달라고 했다. '밥 먹고 합시다'라는 필리버스터. 초유의 필리버스터는 그렇게 나왔다.

 

트위트에서는 이 풍경에 '필리밥스터'라는 신조어를 붙였다. 당연히 새누리당을 향한 풍자가 이어진다. <필리버스터는 국민들 밥 먹이기 위한 것이고, 필리밥스터는 새누리들(새누리당) 밥 먹기 위해서 하는 것>, <여의도 인근에서 식당 이름을 '필리밥스터'라고 지어놓고 장사하면 잘 될까? 간판 상호 아래에 작게 '밥 안 먹이는 건 인격권의 훼손이다!'라고 써놓고>, <필리버스터와 필리밥스터의 차이 ㅡ 야당들은 테러방지 빙자 국민탄압법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했다. 새누리당과 정부는 부적격 김재수 장관을 지키기 위해 필리밥스터까지 했다>

 

국회에서 '밥 먹고 합시다'는 역사가 있다. 3대 4대 안성 국회의원을 지내고 
대통령 선거에도 2번 출마한 오재영 전 의원이 한 말이다.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4학년밖에 다니지 못했지만 해주 오씨 사람들의 전폭적인 선거 지원과 뚝심으로 국회의원이 됐는데 그의 국회 입성 첫 발언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밥 먹고 나서 회의 진행합시다>였다. 4년 임기 동안 '밥 먹고 합시다' 딱 한 마디하고 끝낸 국회의원이라 전해지는 인물이 그 사람이다. 이제 '밥 먹고 합시다'에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참가됐다.

 

영어에 An army marches on its stomach란 속담이 있다. '군대는 배로 행진한다'는 말이니까 '군대는 배가 차야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먹는 게 중요하다는 말인데 라이언 일병이 아닌 김재수 살리기에 나선 병정들이 배를 채우고자 '밥 먹고 합시다'를 외치는 모습을 너무 잘 표현해준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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