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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신임 장관의 흙수저 코스프레

hherald 2016.09.05 20:04 조회 수 : 1401

 

화장실에 물 받는 다라이가 있다, 부모님이 정기 건강검진을 받지 않으신다, 집에 TV가 브라운관이거나 30인치 이하 평면TV, 냉동실에 비닐 안에 든 뭔가가 많다, 고기 요리를 할 때 국으로 된 요리를 자주 먹는다, 집에 차가 없거나 연식이 7년 이상 오래되었다, 집에 곰팡이 핀 곳이 있다, 옷장 안에 유행이 지난 후 쟁여두는 옷들이 많다, 식탁 유리 아래 식탁보가 비닐로 되어 있다, 부모님이 자식 교육에 집착이 심한 편이다, 집에 비데가 없다...

 

인터넷에 유행하는 흙수저 빙고 게임의 항목들이다. 상대적 박탈감을 증가시키는 내용이 많은데 일부 왜곡된 것도 있다. 그런데 그 씁쓸함을 더하는 것이 흙수저란 사실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재산이 없다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씌어진 딱지요, 개인의 노력으로 벗어날 수 없는 멍에라 더 문제다.

 

금수저, 흙수저. 알다시피 금수저는 돈 많고 능력 있는 부모를 둔 사람, 흙수저는 돈도 배경도 없어 기댈 데가 없는 사람을 말한다. 수저론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은수저를 부의 상징으로 여기던 영어 표현 born with a silver spoon in mouth에서 비롯됐다. 은보다 금이 더 비싸 금수저가 나왔고 특히 우리나라에서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흙수저가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풍자로 등장한 말이지만 지금은 그 자체로 사람들의 계층을 결정하고 있다.

 

이런 수저론을 두고 '스스로 노력할 생각은 안 하고 부모 탓만 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래서 우리 대통령도 "노력을 계속하다가 대통령까지 됐다.",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고 했다. 그러자 누리꾼들은 "내가 힘든 이유는 온 우주가 감동할 만큼 '노오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자조한다. 흙수저의 좌절은 그것을 물려준 부모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한번 흙수저로 태어나면 다른 수저를 가질 기회조차 없다는 사회 구조에 대한 절망의 표현이다. 그런데 이걸 모른다. 대통령을 비롯한 기득권은 이를 모른다. 노력하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는 대통령이 과연 금수저 흙수저의 근본 문제인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신임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자신의 모교 사이트에 <온갖 모함·음해·정치적 공격이 있었다>, <시골 출신에 지방학교를 나온 이른바 흙수저라고 무시한것이 분명하다>, <장관으로 부임하면 그간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본인의 명예를 실추시킨 언론과 방송ᆞ종편출연자를 대상으로 법적인 조치를 추진할 것>이라고 썼다. 김 장관은 청문회에서 아파트 분양 특혜, 어머니의 차상위계층 부당 혜택(10년간 건강보험공단에서 의료비 보조를 받음) 의혹 등이 불거졌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시골 출신이며 지방대를 나온 흙수저라 억울하게 당했다며 소위 '흙수저 코스프레'를 했다.

 

금수저의 혜택을 편법과 비리로 다 누리고 요리조리 변명으로 빠져나오려한 그가 오히려 흙수저 코스프레로 억울하다고 했다. 하나를 보면 영을 안다고 노모를 잘 보살피지 않는 사람이 농민 대변하는 장관이 되면 300만 농민은 어떻게 챙기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의혹으로 사퇴 압력이 가중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해외순방 중 전자결재로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우리나라에는 흙수저를 진짜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아 수저론이 해결될 조짐조차 없나 보다. 

 

헿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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