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설에는 떡국이 풍성했다. 한인 단체들이 저마다 떡국 잔치를 한 덕에 영국 한인사회의 설이 명절다웠다. 우리가 이처럼 풍성한 설을 맞고 떡국 나눈 것이 언제였던가 아련하다. 나눌 줄 아는 한인사회의 올 설 풍경이 따뜻했다.
우리는 떡국과 나이를 함께 먹으면서 살았다. 설에 먹는 떡국을 '첨세병'이라고 하는데 풀이하면 '나이를 먹는 떡'이라는 뜻이다. 떡을 넣고 끓인 탕이니까 떡국을 '병탕'이라 불렀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나이를 물을 때 "병탕 몇 사발 먹었지?"하고 물었다. 고전판 "민증 까"라고 할까.
설날에 떡국을 먹기 시작한 건 알 수 없지만 오래됐다고 한다. 정확한 기원을 알 수 없지만 복을 비는 마음에서 먹은 음식인 것은 맞다. 새해 차례에 반드시 올리는 음식이고 '세찬'이라고 새해에 세배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음식이었다. 지난 설날 점심에 재영한인총연합회(회장 황승하)가 노인회(회장 김지호)를 방문해 함께 떡국 잔치를 했는데 그날 노인정에 들러 떡국을 먹은 젊은이들이 참 많았다. 말하자면 이 젊은이들은 어른께 인사하러 와서 '세찬'을 먹은 것이다.
‘열양세시기’에 떡국을 ‘좋은 멥쌀을 빻아 채로 곱게 친 흰가루를 쪄서 안반에 놓고 자루달린 떡메로 쳐서 길게 만든 가래떡을 엽전 모양만 하게 썰어 육수물에 끓인 음식’이라고 설명한다.
떡국은 가래떡으로 만든다. 길고 하얗다. 장수를 기원하며 밝게 보내자는 의미라고 한다. 가래떡을 잘게 자르면 동그란 엽전 모양과 비슷하다. 물질적 풍요를 기원한다. 흰쌀로 만들어진 떡국은 양의 기운을 의미한다는데 춥고 해가 빨리 지는 겨울은 음의 기운이 강하므로 음기를 누르기 위해 양기가 가득 담긴 떡국을 먹었다고 유추한다. 떡국에 올라가는 고명으로 소고기와 꿩고기를 사용했는데 소는 비싸고 꿩은 구하기 힘들어서 닭으로 대체해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 나왔다고 한다.
예로부터 설은 천지 만물이 새로 시작되는 날인 만큼 엄숙하고 청결해야 한다는 뜻으로 깨끗한 흰떡을 끓여 떡국을 먹었다고 한다. 지난 설날은 부지런히 다녔으면 이런 떡국을 서너 차례 먹을 수 있었다. 한인회 떡국, 노인회 떡국, 문예원 떡국, 탈북민협회 떡국, 이 떡국 저 떡국 많이 먹고 많이 청결해지고, 떡국 먹으며 그냥 나이 먹을 게 아니라 나잇값 하는 진짜 나이를 좀 먹고...
지난 설 풍경이 따뜻했다. 우리 영국 한인사회의 인심이 이리 좋고 평화로운데 무엇이 문제일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2024년 영국 한인사회의 설만 같아라' 하는 말도 나와야겠다.
헤럴드 김 종백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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