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일, 한인종합회관에서 3·1절 기념식이 열렸다. 김숙희 한인회장의 개회사로 시작해 독립선언서 낭독,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 만세삼창까지 마친 뒤 기념식에 모인 재영한인들이 단체로 기념촬영을 했다. 재영한인사회에 3·1절 기념식 치러진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영국에 사는 한인들의 역사 속에 3·1절 기념식은 다른 국경일보다 더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한번 되새겨보고자 한다.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이다. 노르웨이와 핀란드 국경에서 가까운 러시아 최북단 도시 무르만스크의 철도회사에 조선인 노동자가 500여 명이 있었다. 이곳에 진출한 영국군이 그들을 고용해 일을 시켰는데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철수할 때 이들 중 200명을 데리고 에든버러로 온다. 그때가 바로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해다. 이에 일제는 그들이 일본 소속이니 조선으로 보내라고 했고 당시 영일동맹으로 일본과 친했던 영국은 그들을 돌려보내려 했다. 이때 미스터션샤인 황기환이 나서서 영국, 프랑스 정부와 협상해 35명을 파리로 데리고 간다. 147명은 조선으로 갔다. 나머지 18명의 행방은 알 수 없는데 이들이 영국에 남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프랑스로 간 35명의 한인이 스위프라는 도시에서 3·1 운동 1주년 기념 경축식을 열었다. 유럽 각지 한인들을 초대했는데 당시 신문 '신한민보'에 따르면 <경축식에는 한인 노동자들과 학생 10여 명, 영국 런던에서 가족을 데리고 온 10여 명과 파리 위원부 인사들이 모였다>고 한다. 유럽에서 열린 첫 번째 3·1절 기념식에 재영한인이 분명 참석한 것이다.
재영한인과 3·1절 기념식의 연관 역사는 또 있다. 재영한인회의 뿌리는 1958년 결성된 '재영한국유학생회'다. 영국에서 한인들이 모여서 만든 최초의 단체다. 이 단체가 생긴 날이 1958년 3월 1일이다. 그해 대사관에서 삼일절 행사를 했는데 그 자리에서 6명의 유학생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대사관 직원까지 모두 16명이 모였다고 한다. 당시는 유학생 6명이라고 하나 나중에 면면을 보면 외무부 장관, 국회의원, 한국원자력연구소장, 석좌교수 등 한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이들이다. 이들이 3·1절 기념식을 하면서 처음 한인회를 만들었다.
이처럼 재영한인과 3·1절 기념식은 이래저래 인연이 깊고 의미가 있다.
3·1절 제102주년인 올해 3월 1일은 공교롭게도 제20대 대통령 재외선거 기간이라 이날 기념식에 대사관 관계자들이 참석하지 못했다. 내년에도, 아니 해마다 계속 재영한인들이 3·1절 기념식을 개최하기를 바라고 그 행사가 민관합동으로 성대하게 열렸으면 하는 기대를 한다.
이날 대통령 기념사에서 말하기를 지금 우리 곁에 계신 생존 독립유공자는 스물네 분에 불과하다고 한다. 영국에도 이한응 열사의 순국 유적지가 있고 외국인 독립유공자 중 가장 높은 2급 서훈자인 베델 선생을 비롯해 6명의 영국인 독립유공자가 있다. 이들을 알리고 기리는 노력과 활동이 우리에게 요구된다.
오랜만에 3·1절 기념식을 되살린 재영한인회의 노고 덕분에 기억도 되살리는 기회가 됐다. 좋은 일이다.
헤럴드 김 종백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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