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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전두환 비석

hherald 2017.08.14 18:34 조회 수 : 1171

 

'망월동 묘지'라 불린 5.18구묘역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들이 처음 묻힌 곳이다. 1997년 운정동 5.18 국립묘역이 완공돼 이장되기까지 민주 영령들이 잠든 곳이었다. 지금도 5.18 희생자 119기, 1980년 이후 민주화 투쟁 중 분신했거나 군부독재에 살해된 민주열사 19기의 묘가 안장돼 있다. 그러니까 광주에는 두 개의 5.18 묘역이 있는 것이다. 하나는 5.18신묘역인 운정동의 국립 5.18 민주묘지이고, 다른 하나는 5.18구묘역인 망월동 묘역이다. 두 묘역이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육교로 연결되어 있다.

 

 

원래 광주 망월동에는 광주 시립묘역이 있었다. 1980년 5.18 당시, 전두환 신군부의 학살로 희생자 유해가 넘쳐 광주 시립묘역 3구역에 임시 안장했다. 그나마 가족 친지가 있던 주검은 손수레에 실려와 묻혔고, 연고자가 없거나 도청 함락 때 희생된 주검은 비닐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와 묻혔다고 한다. 그런데 묘역은 묘역이지만 막상 3구역에 민주화 투쟁의 희생자들이 몰려서 묻히니 이 묘역이 어떤 상징성을 갖게 되고 전두환 정권은 이점이 싫어 이장하면 생활지원금을 준다는 식으로 유가족을 회유했다. 아예 이 묘역을 없애려고까지 책동했으나 오히려 '민주성지'로 국내는 물론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바로 이 5.18구묘역에 전두횐 비석이 있다. 물론 버젓이 서있는 것이 아니라 묘역을 가는 길목 아스팔트 바닥에 깨진 채 박혀 있다. 그 옆에는 광주 전남 민주동지회 명의의 안내문이 있다. <잊어서는 안될 역사의 현장. 민족의 반역자요 광주 민중 학살과 자주 민주 통일의 원흉 전두환이 자기 죄를 은폐하고자 학살현장인 광주를 방문하지 못하고 1982년 3월 10일 담양군 고서면 성산마을 에 잠입하여 민박 기념비를 세웠다. 이에 북받쳐 오르는 분노와 수치심을 참을 수 없어 1989년 1월 13일 이 비를 부수어 이곳에 묻었나니 5월 영령의 원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이곳을 짓밟아 통일을 향한 큰 길로 함께 나아갑시다. 영령들이여 고이 잠드소서> 그러니까 전두환이 민박집에 잠 자고 간 뒤 세운 비석을 깨 바닥에 깐 것이다. 밟고 가라고.

 

전두환의 비석을 지난간 발걸음들을 보자. 지난해 당시 더불어 민주당 대표였던 문 대통령이 20대 총선을 앞두고 구묘역을 찾았다. 이한열 열사의 묘를 찾아온 것이다. 바닥에 놓인 '전두환 비석'을 본 문대통령은 안내인에게 “원래 깨져 있었던 건가요? 밟고 지나가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비석을 밟고 묘지로 향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도 이 비석을 밟았다. 그런데 김무성 의원은 "나는 밟을 수 없지"라며 비켜 지나갔었다.

 

안철수 의원은 그때그때 달랐다. 지난해 천정배 당시 국민의당 공동대표와 함께 방문했을 땐 비석을 밟고 지나갔다. 그러나 대선 후보 확정 뒤 첫 지방 일정으로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았을 때는 구 묘지 입구에 설치된 비석을 밟지 않는 동선으로 참배를 마쳐 '보수표를 의식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을 샀다. 그리고 이번에 당 대표에 출마해서 <택시운전사> 영화를 보고 망월동 5·18구묘역을 찾았다. 영화의 실재 인물인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추모비를 슬픈 표정으로 참배했다. 정작 전두환 비석을 밟았다는 기사가 없어 이번에도 밟지 않았다고 추측될 순간 안철수 측에서 망월동 관리소장의 안내로 전두환 비석을 밟고 지났다는 해명이 나왔다. 그리고 망월동을 찾은 것이 비공식 일정이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고 한다

 

전두환 비석. 하찮은 비석 하나를 대하는 자세에서 그 인물의 일상의 상식이 어떤가를 가늠할 수도 있게 해주니 참 별스럽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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