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Fired!"
영국 BBC 프로그램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에서 매주 외치던 소리. 수습사원, 견습직원 정도로 해석될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을 영업 실적 등으로 경쟁시켜 매주 열등한 사람을 한 사람씩 해고하고 마지막에 한 사람을 고용하는 생존 리얼쇼다. '어프렌티스'는 미국 TV쇼로 더 유명한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유명인으로 만들어준 프로그램이다. 빨간 넥타이를 맨 트럼프가 출연자를 향해 거침없는 막말로 비난과 모욕(진짜 갑질한다)을 준 뒤 외친다 "You're Fired 넌 해고야!". 최후의 일인으로 살아남아 "You're hired 당신을 고용했어"라는 말을 들으려 참가자들은 이 모욕의 여정을 꾸역꾸역 감수한다. 원래 트럼프의 유행어가 아니었는데 어쩌다 그의 유행어인양 사람들이 믿게 됐는데 그래서인지 대통령 유세 때 만약 대통령에 당선되면 오바마한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묻자 "You're Fired!"라고 했다.
밥줄이 걸린 이들에게 "넌 해고야"라는 말은 거의 사형선고 격이다. 스폰지밥이라는 에니메이션이 있다. 사각 스폰지에 얼굴이 있고 빨간 넥타이를 매고 팔다리가 달린 스폰지밥이 주인공인데 이 만화영화 에피소드 중 하나가 You're Fired. 집게리아라는 식당에서 열심히 일하는 스폰지밥에게 집게사장이 다가와 "넌 해고야"라고 말한다. 스폰지밥을 해고할 경우 5센트의 지출을 아낄 수 있다는 것. 스폰지밥은 공짜로라도 일하겠다고 사정하지만 매정하게 거절당한다. 고작 5센트라도 아낄 수 있으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해고할 수 있다는 갑질을 보여주니 해고는 어린이 만화영화에서도 큰 고통으로 그려진다.
물론, 사람 관계에서 해고할 수 있고 해고당할 수도 있다. 일하다 고의로 비위를 저지르거나 큰 과실을 할 경우, 기업 경영상 문제로 구조조정을 하거나 도저히 능력이 없거나 자질이 부족해 업무를 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해고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넌 해고야"를 외치는 갑질은 범죄다. 뚱뚱하거나 못생기거나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면 안 된다. 맞다. '비행 가족'으로 불리는 대한항공 얘기다. 회사 달력을 만드는 직원이 질책성 질문에 말대꾸했다는 이유로 욕설을 듣고 해고되거나 할머니처럼 보이는 사람을 할머니라고 불렀다고 폭언과 욕을 하고 해고하는 건 생존을 위협하는 범죄의 흉기를 맘 내키는 대로 휘두르는 것과 같다. "You're Fired!"를 배설하듯 내지르던 섣부른 갑질 재벌 가족의 앞날이 어떨지 좀 보이는듯 하다.
파란색 리본 모양이 그려진 '갑질 근절 캠페인' 스티커를 내세운 대한항공 직원들의 촛불집회. 벌써 4회째 집회였는데 이날 가장 눈에 띄는 피켓이 'CHO You're Fired'. 이 가족은 이런 소리 들을 날이 올 줄 상상이나 했을까. 집회에 모인 이들은 그들의 바람을 담은 메시지가 적힌 파란색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그들의 갑질에 되돌려주는 준엄한 외침이 종이비행기에 적혀있었다.
"You're Fired!"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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