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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한인사회의 쌀독과 인심

hherald 2018.02.26 20:47 조회 수 : 2273

 
 
 
 
 
딸이 프랑스에 사는 한인 친구로부터 "영국 한인, 또 사고 쳤다며?"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물론 교육기금 같은 사건은 생기지 않아야 옳지만 그렇다고 마냥 우리 자신을 우울하게 볼 일은 아니라고 했다. 2010년 5월에 쓴 단상에서도 영국 한인사회의 희망을 보고 있었다. 
 
<지금 영국 한인사회의 경기가 좋지 않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직접 사업을 하는 이들은 피부로 느끼고, 한인 수가 준 것이 눈에 띈다고 한다. 경기가 나빠 내 형편이 어려우니 남 생각할 겨를 없고, 그래서 한인사회의 인심이 팍팍해졌다는 말도 들린다. 그런데 글쎄, 2010년 5월의 영국 한인사회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닌듯하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제 살림이 든든해야 남을 돕거나 생각할 겨를이 있다는 뜻이다. 비단 개인 살림살이만이 아니라 국가나 기업이나 어떤 단체나 모두 형편이 넉넉해야 남을 돕든, 사회봉사를 하든 할 것이다. 나라의 쌀독이 얼마나 여유 있느냐에 따라 사회보장에 얼마나 쓸 수 있느냐가 판단된다는데 우리나라는 그다지 쌀독에 여유가 있는 나라가 아니다. 정부 예산의 10% 정도가 사회보장에 사용된다니 50%가 넘는 스웨덴이나 45% 정도 되는 독일, 프랑스 같은 유럽 국가에는 한참 못 미친다. 그렇다고 우리가 인심이 팍팍한 나라는 아니다. 정부의 쌀독이 풍족하지 않아 못하거나, 정부가 아예 신경 쓰지 않는 구석진 곳의 사회보장은 뜻있는 이들이 대신하고 있다. 지금도 소외된 이에게 밥을 퍼주는 착한 이들은 결코 쌀독이 가득 차서가 아니다.
다시 영국 한인사회로 얘기를 돌려 경기가 나빠 인심이 나올 쌀독이 없다고 판단해 지금 한인사회가 야박한 인심으로 가득 차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인심이 있는 곳이 영국의 한인사회다.
영국의 한인사회에는 한글학교의 적은 학비조차 부담스러운 가정의 자녀들을 숨어서 지원하는 사람이 있다. 영국의 한인사회에는 가난한 가정에 한 번씩 몰래 쌀을 두고 가는 작은 교회가 있다. 영국의 한인사회에는 연금으로 살면서 노숙자의 밥을 해주고 이불을 구해 덮어주는 노인이 있다. 영국의 한인사회에는 영국을 방문한 한국인이 영국의 한인사회는 고약한 인심이 있는 곳이라고 오해하지 않도록 스스로 손해를 보는 가이드가 있다. 영국의 한인사회에는 어버이날을 잊지 않고 노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식당이 있다. 영국의 한인사회에는 명절이 되면 노인들의 머리를 손질해주는 미용실이 있다. 영국의 한인사회에는 여기에 옮기지 못한 수많은 미담이 있다. 비단 쌀독이 풍족하지 않아도 인심이 넉넉한 이들의 공통점은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나 그 사회를 유지하는 일정의 규범이 있고 그에 벗어난 것을 스스로 규제하는 자정 능력이 있다. 건강한 사회는 자정 능력이 있는 사회다. 이기와 공명을 좇는 몇몇 사람이 아무리 자신을 색칠해도 이런 진정한 인심보다 빛날 리 만무하다.
"제발 날 좀 봐달라"는 사람은 누군가를 끌어내려야 하고 그러다 보니 인심을 오히려 팍팍하게 만든다. 사회 구성원들이 이처럼 잘못된 일부를 평가하고 자정시킬 기준은 이런 아름다운 인심과 비교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인심, 그것이 있는 사회가 진정 건강한 사회다. 그래서 영국의 한인사회는 아직은 충분히 건강한 사회다. 2010년 7월 17일>
 
지금 보니 노숙자를 돕던 노영하 선생은 고인이 되셨고 쌀을 선물하던 교회는 연락할 길이 없다. 그러나 그때보다 더 많은 선행이 있음을 아는데 여전히 숨어서 선행을 하는 이들은 이 헤럴드단상조차 번거롭다고 한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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