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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역시 김연아였다

hherald 2018.02.12 19:13 조회 수 : 2477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달항아리 성화대에 불을 붙인 성화 점화자는 '역시나' 김연아였다. 김연아는 그리스에서 채화된 성화가 인천국제공항으로 들어왔을 때 국내 첫 봉송 주자였기에 혹 다른 사람이 최종 주자가 아닐까, 남북선수가 공동 점화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여러 추측을 불렀지만 역시 김연아였다. 그녀는 아이스 댄스를 선물하고 마지막으로 성화를 점화했다. 

 

올림픽 성화 봉송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베를린 올림픽은 하켄크로이츠기(아리안 계통의 전통 문양인 卐을 45도 정도 돌려놓은 상징)가 대회장 안팎에 휘날리던 나치즘 선전 올림픽이었고 미국 흑인선수들에 대한 인종차별 올림픽이었다.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한 올림픽이기도 하다. 베를린 올림픽은 성화 봉송부터 나치의 정치 쇼로 악용됐다. 처음으로 성화 채화, 봉송, 점화가 근사하게 치러졌다. 이때도 최종 주자이면서 점화자에 관심이 쏠렸다. 아리안 민족이 우월하다고 믿고 싶었던 나치 정권은 프리츠 실겐이라는 늘씬한 백인 육상 선수를 낙점했다. 그는 올림픽 출전권도 없었다. 단지 잘 생겼고 백인이고 뛰는 모습이 기품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최종 성화 주자로 유명 선수가 나온 것은 1952년 헬싱키 하계 올림픽이 처음이며 그 후로 대부분 유명 선수가 최종주자가 됐다. 1964년 도쿄 하계 올림픽에서는 사카이라는 육상 선수가 점화했는데 당시 올림픽 출전 선수가 아니라 1945년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던 날에 태어난 육상 선수였기 때문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보통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일반인 두 명과 젊은 선수 한 명이 선정되었다. 최종주자가 많기로 으뜸이었는데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일곱 명의 최종주자가 나온다.

인상적인 최종 주자, 혹은 점화자를 꼽는다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장애인 양궁 선수 안토니오 레보요. 패럴림픽 선수로는 역사상 유일한 최종 점화자였다. 화살에 불을 옮겨 성화대로 쏘아넣어 점화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1996년 애틀랜타 하계 올림픽의 개막식을 본 이들은 복싱의 전설 무하마드 알리의 떨리는 두 팔과 무표정한 얼굴을 기억할 것이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던 그는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불안해 보였다. 힘겹게 성화대에 불을 붙인 그는 어눌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이렇게 하는데 당신들은 왜 못하겠습니까? 기억하세요. 포기하지 않는다면 불가능은 없습니다." 
2016년 리우 하계올림픽은 최종 주자가 펠레 아니면 이변이라고 했는데 결과는 리마라는 육상선수. 2004년 아테네 하계 올림픽 마라톤 경기 도중 관객의 방해를 받고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쿠베르텡 메달을 받은 최초의 남아메리카 선수였다.

 

이번 올림픽 성화 봉송에는 남북한의 인구수를 상징하는 7500명의 주자가 참여했다. 최종 주자는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미국 선수단장의 말처럼 이 단일팀은 나중에 노벨 평화상 후보가 될 지도 모른다)의 22살 동갑내기 선수인 남쪽 박종아와 북쪽 정수현, 그리고 점화자는 역시 김연아. 평창 올림픽 성화의 이름은 ‘모두를 빛나게 하라(Let everyone shine)’. 달항아리의 성화가 한반도 언 땅과 얼었던 마음마저 녹이는 듯 하다.

헬러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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