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부터 얘기하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하루의 3분의 2를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라고 했다. 니체는 그때 벌써 하루 8시간 이상 원하지 않는 일에 잡혀 있으면 노예라 생각했다는 말인지. 아마 자신의 자유의지로 활동할 시간이 적은 상태를 노예로 표현했으리라 본다. 박근혜는 그래서 7시간만 썼다. 물론 당시는 배가 침몰해 학생들이 바다에 빠져 있는 절대 심각한 상황이었었지만 그래도 노예 소리를 듣지 않으려 딱 7시간만 썼다. 그리고 그때의 7시간은 아직도 금지된 시간이다.
사실, 노예는 사전적으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나 자유를 빼앗겨 자기 의사나 행동을 주장하지 못하고 남에게 사역되는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노예는 누군가가 정해놓은 범주 내에서만 활동한다. 누군가 연상된다. 그런데 한편으로 무언가를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 광적으로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 그 무언가에 아예 속박된 존재를 가리킬 때도 노예라는 말을 한다. 그 대상을 위해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고, 주는 것을 아끼지 않는 상태가 되면 그 대상의 노예가 된 것이다. 좋게 비유하면 무한한 사랑이지만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주어도 아깝지 않은 최순실을 향한 박근혜의 몰입은 노예다. 노예 중에서도 혼이 비정상인 노예다.
무당 巫堂 을, 또는 무당이라고 비하할 뜻은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한다. 그런데 정작 무당이 아닌데 무당 같은 최순실은 평등하다는 헌법을 무시했다. 그리고는 불평등의 척도로 최근 대한민국을 경영했다. 무속인을 종교인이라 할 수 없지만, 최순실은 아예 무당에도 끼지 못했다. 혼이 비정상인 여자 여덟이 모여 선녀라고까지 자칭했건만 무신교총연합회 총재는 <무당 최순실 표현은 무속인 명예훼손>이라 했으니 이 무슨 창피. 그러고 보니 무슨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농단했다는 말이다. 과외 선생님의 대명사인 빨간 펜 선생님처럼 빨간 펜을 들고 대한민국의 국방 외교 통일 문화 정책을 재단했다. 쪽팔리다 못해 자괴감이 든다. 소위 우리가 돈 없고 빽 없다고 가오가 없는 것도 아닌데 이런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이.
그런데 한 편으로 두렵지 않은가. 누구 말처럼 최순실이 정말 영험하다면 우리는 이 죄를 어쩌랴. 최순실이 그깟 하찮은 국정을 농단했다기로서니 우리가 감히 최태민 최순실 미륵을 농단하다니. 만약 전 우주가 나서서 최순실을 돕는다면?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전 우주가 돕는다는데. 그럼 트라팔가 광장의 넬슨을 내리고 최태민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최순실이 다녀간 히드로 공항에 말 탄 최순실이라도 하나 세워야 하지 않을까. 부모 잘 만난 것도 능력, 돈도 실력이라는 최유라의 말씀을 공항 입구 공익광고판에 걸어 전 세계인이 알아듣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한국에 나타난 최순실을 보니 영 무섭지 않더라. 박근혜의 힘을 빌려 별짓을 다하더니 <국민 여러분 죽을 죄 지어... 용서해주십시오>라고 하는데 그 말이 이번엔 최순실의 입을 빌려 박근혜가 하는 말처럼 들린다. 아! 대한민국.
최순실은 검찰청 포토라인에 프라다 신발 한 짝을 벗어 놓았다. 신통방통하다는 오방낭도 몇 개 떨어뜨려 주지 않고선...
아! 대한민국. 자괴감에 헛웃음만 웃을 시간은 분명 아닌데.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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