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프랑스 고급 브랜드인 루이뷔통 가방 가격이 몇 달 새 세 차례나 올랐다는 식의 기사가 나오면 반드시 따라오는 표현으로 '호갱'이란 게 있다. 소위 명품에 있어서 한국 고객은 <공급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든다>는 일반 경제 공식이 통하지 않는 특별한 고객으로 가격이 오르든 말든 잘 사가기 때문에 '호갱'으로 통한다.
호갱은 '호구'와 '고갱'이 합쳐진 말이다. '호구'는 바둑에서 유래한 말인데 스포츠 경기에서 평소 잘 하다가 어느 특정 상대에게는 맥을 못추는, 상대에게 좋은 일만 해주는 팀이나 선수를 일컫는 말이다. 쉽게 말하자면 바보라는 뜻인데 욕이 아니라 표준어다. '고갱'은 고객님이라는 말. 고객이란 말이 고객님으로 발음하면 고갱으로 소리 나는 것을 좋지 않은 뜻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 <사랑합니다 고객님>에서 유래했다고 할까. 텔레마케터나 고객 서비스 센터 직원이 영혼 없이 반복하는 <사랑합니다 고객님>은 혜택은 별로 없으면서 겉만 번지르르한 상품을 구매하라는 유혹에 불과하다는 걸 누구나 안다.
처음 호갱은 명품 브랜드의 지름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다. 휴대폰 구매자가 첫 호갱이었다. 휴대폰 대리점이나 판매점에서 휴대폰에 대해 잘 모르는 소비자(주로 중년 이상의 나이 든 고객)가 오면 잘 팔리지 않는 제품을 비싼 값에 팔거나 소비자에게 불리한 할부 조건으로 덤터기를 씌우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 편에서 제품을 설명하지 않고 리베이트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제품이나 잘 팔리지 않는 제품을 감언이설로 속여 떠안기면 자신이 무척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는 착각에 빠져 그 휴대폰을 안고 가는 소비자가 바로 호갱이었다. 정보와 혜택에서 소외되니 소비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나이 든 세대의 슬픈 군상이랄까.
'봉'이란 말이 호갱과 비슷하다. '봉'이야 원래 귀한 새, 봉황의 수컷을 일컫는 말('황'은 봉황의 암컷을 말한다)이지만 소비자를 ‘봉’으로 취급하는 것은 절대 봉황새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어수룩해 이용해 먹기 좋은 사람이란 말이다. 영어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는데 '나는 봉이야'는 'I am a sitting duck'. 앉아 있는 오리는 잡기 쉬우니 만만한 사람, 이용하기 쉬운 사람을 말한다.
명품 구매 사유야 천 가지가 넘겠지만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하는 비교 심리, '이거 없으면 얕보지 않을까'하는 열등감으로 명품에 집착하면 호갱, 봉, sitting duck이 되기 쉽다는 말이다.
명품 브랜드 가격이 국제 평균보다 가장 비싼 곳이 중국, 다음이 한국이다. 가격을 올릴 이유가 없는데 올리면 그에 따른 소비자의 적절한 행동이 있어야 하는데 유독 명품을 대하는 한국 소비자의 태도는 그렇지 않으니 '호갱'을 자처하지는 않는지. 가격이 올라도 서비스는 나아지지 않고 봄·가을 혼수철만 되면 무조건 가격을 올리는 그들의 '방침'에 너무 너그러운 한국의 명품 애호가들이 스스로 '호갱'을 자처하지는 않는지. 그들의 뻔뻔스런 '묻지마 인상'은 '묻지마 호갱'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기 때문이 아닌지.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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