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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대통령 고스톱

hherald 2010.07.16 15:34 조회 수 : 4853

우리나라 성인남녀 열 명 중 아홉 명이 고스톱을 할 줄 안다는 통계가 있다. 온라인게임 ‘한게임 맞고’는 가입회원 수가 2,200만 명이다. 1960년대 이후부터 저변이 확대됐다는 고스톱은 고작 반세기도 안되는 동안 이처럼 강력하게 한국인의 생활 속에 뿌리를 내렸다. 판쓸이를 하는 대박의 행운과 설사를 하는 불운, 도리어 박을 씌우는 역전의 가능성이 모두 포함된 짜릿한 맛이 있어 이것만큼 시간 보내기 좋은 놀이가 없다고 하나 물론 고스톱은 오락을 넘어 도박이 될 수 있다. 판례에서 보면 점당 100원의 고스톱은 오락으로 인정해 도박죄로 처벌하지 않는다고 하니 한국에서는 점당 100원, 영국에서는 점당 5펜스 이하의 고스톱을 쳐야 오락이다.

 

고스톱의 룰은 정하기 나름이다. 수많은 규칙이 있지만 그때마다 치는 사람이 정하면 그것이 룰이 된다. 누가 처음에 정했는지 알 수 없는 많은 규칙이 있다. 그러다보니 시대상에 맞춰 정치권을 풍자하고 대통령을 풍자하는 이색 규칙이 많이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을 재미로 한 번 간추려 본다.

 

박정희 고스톱은 1등에게 최고의 혜택을 주는 고스톱으로, 1등 마음대로 규칙을 정할 수 있다. 그리고 1969년 자신의 3선을 위해 헌법을 바꾼 '3선 개헌'을 풍자해서 스리고를 불렀다가 실패하면 기본 점수에 해당하는 돈을 나머지 선수에게 주는 것도 있다.

 

아무리 좋은 패가 있어도 죽어버리는 사람을 말할 때 최규하식 고스톱이라 한다. 대통령으로 있으면서도 국보위의 위세에 눌려 대통령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풍자해서 싹쓸이해도 피를 1장씩 받아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피를 1장씩 줘야 한다.

 

전두환 고스톱은 싹쓸이하면 상대방이 가진 아무거나 가지고 올 수 있다. 그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것을 빗댄 룰이다. 6자 열끗, 2자 피, 9자 피를 먹으면 17점이 되는 6·29는 노태우 고스톱이고, 김영삼 고스톱은 선이 자신의 패를 상대방에게 모두 보여준 뒤 게임을 하는 것이다.
노무현 고스톱은 매번 판이 시작될 때마다 별도의 판돈을 모아 멧돼지가 들어 있는 홍싸리(7) 4장을 모두 먹는 사람이 갖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거 당시 '희망돼지'로 기금을 모은 점에서 착안한 것. 다만 이렇게 받은 돈의 절반은 가장 많이 잃은 사람에게 나눠줘야 한다.

 

이번에 새롭게 등장한 이명박 고스톱은 7·4·7경제성장 공약을 풍자했다. 7자 열끗, 4자 열끗, 7자 띠를 먹은 사람이 판을 제압하지만 그가 촛불을 상징하는  5자 열끗이 있으면 7·4·7패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다.

 

패가 안 좋아도 힘으로 치면 전두환 고스톱이요, 패가 좋든 나쁘든 아무 생각없이 치면 노태우 고스톱이요, 자기가 나쁜 패이면 다 같이 패가망신하는 것을 김영삼 고스톱이라 한다.

가장 쓸모없는 피를 갖고 게임을 이길 수 있다는 룰이 가장 파격적인 고스톱은 권력자를 풍자하는 룰까지 속속 만들어져 서민들의 사랑을 더 받게 됐다. 도박으로 덤비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풍자 속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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