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수상자 선정에 문제가 있다고 말이 많다. 지금까지 노벨평화상은 대부분 개인에게 주어졌고 국제기구나 비정부기구(NGO)가 받은 적이 몇 차례 있지만, 올해처럼 지역공동체가 수상하기는 처음이다. 그런데 말이 많은 이유가 지역공동체가 수상자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과연 EU가 받을 자격이 있느냐고 따지는 거다. 수상자인 EU에 속한 국가에서조차 EU의 수상은 탐탁지 않다는 반응이다.
그래서 노벨평화상이 뭔가 업적을 이뤘기 때문에 주는 상이 아니라 상을 받고 좀 더 잘해보라는 격려 차원의 상이 됐다는 비아냥을 받는다.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EU가 전쟁의 땅인 유럽을 평화의 대륙으로 바꾸는 데 일조했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지만, 오히려 지금 EU는 경제 상황의 위기에 놓여 유로존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인데 무슨 정치적 역할을 강조하느냐는 비난을 자처했다.
왜 하필 지금 EU에 노벨평화상을 줬느냐는 시기도 지적받는다. 바로 '평화상의 정치화' 논란이다. 비슷한 지적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노벨평화상을 받을 때도 있었다. 노벨위원회는 오바마 대통령이 다자외교와 핵무기 감축 노력을 해서 상을 줬다고 했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열흘 만에 노벨상 후보로 추천됐다. 열흘 동안 무엇을 얼마나 했기에 자격이 됐을까. 그래서 업적보다는 앞으로 잘해보라는 격려의 상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1896년 알프레드 노벨이 죽은 뒤 4년이 지난 1901년 그의 유언에 따라 제1회 노벨상이 주어졌다. 첫 번째 평화상을 국제적십자사의 설립자인 앙리 뒤낭이 받았는데 매년 수상자가 결정될 때마다 가장 관심을 끈 것은 평화상이었다. 그만큼 뒤탈도 많았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빌리 브란트 총리, 테레사 수녀, 아웅산 수치, 넬슨 만델라 등 개인과 국제적십자사(1917, 1944, 1963년 3차례나 받았다), 국제아동기금(UNICEF), 국제노동기구(ILO),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유엔평화유지군, 지뢰금지국제운동, 국경없는 의사회 등 오랜 기간 지구촌 평화를 위해 헌신했다는 점에서 이견이 없었던 경우도 있었지만,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주역인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베트남 전쟁의 정책 책임자 헨리 키신저, 극단적 시오니즘에 빠진 테러리스트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 등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은 노벨의 유지를 위배한 것이며 상의 위상을 추락시켰다는 질타를 두고두고 받는 결과를 낳았다.
상을 받지는 않았지만,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소비에트 연방의 이오시프 스탈린,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 등도 노벨평화상 후보로 오른 바 있다. 이들에게 노벨평화상을? 놀랄 수도 있겠지만 노벨상은 사회, 과학, 역사, 철학, 법학 교수나 한 국가의 입법부 의원이면 누구나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다. 그래서 이처럼 평화와 전혀 관계없는 인물도 평화상 후보에 오르는 것이다. 히틀러도 당시 스웨덴의 한 국회의원이 추천했다.
지금 유럽의 현실을 직시하면 EU가 과연 희망의 상징이랄 수 있을까. 북유럽과 남유럽 국가 간의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 속에 비참하게 무너지는 국가들이 줄을 잇는 지금 EU의 노벨평화상은 어떤 과정을 거쳐 선정됐는지 궁금하다. 더욱이 노벨평화상은 심사과정이 불투명하고 의아스럽다는 말은 곧잘 듣기에 더 궁금하다.
여담이지만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도 노벨평화상을 받지 못했다. 한평생을 비폭력 무저항 운동에 바쳤던 그는 5번이나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노벨평화상을 받는 것도 운과 때가 맞아야 한다는 뜻일까.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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