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은 어린이날이다. 어린 시절, 이 날은 배불리 먹고 놀이공원에서 유람차도 탔다. 신나게 놀고 실컷 먹는 것보다 가장 신났던 것은 평소에는 어디에서도 발언권이 없었는데 생일과 어린이날만은 그래도 무슨 얘기를 하면 어른들이 들어줘서 좋았다는 점이다. 어린이날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농담이 있는데 어린이날 노래에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것을 어른은 밤늦도록 놀고, 어린이는 일찍 잠을 자라는 뜻의 <우리들은 자란다>라고 만들어 장난을 쳤다.
우리말의 '어린이'라는 말은 소파 방정환 선생이 창안해 처음 사용했다. "아이"라는 말이 비하된 느낌이 있어 ‘젊은이’ ‘늙은이’와 대칭되는 표현으로 '어린이'라는 말을 썼는데 ‘어린사람’이라는 뜻과 함께 어린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우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소파 방정환 선생처럼 어린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우한다는 것, 당연한듯하지만 사실 어린이를 인격체로 생각한 역사는 아주 짧다. 어린이 복지가 잘 마련된 서구에도 어린이를 배려한 것은 '인권'이란 개념이 성립되면서부터니까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사람들이 어린이를 인격체로 생각하고 대우해 줬다고 봐야 한다.
기원전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록부터 1863년 영국 아동노동 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 이르기까지 기록을 보면 어린이 복지 천국이라는 유럽에서도 어린이는 '어른에 못 미치는 노동력'일뿐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린이 노예는 3년 정도 사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어린이 노예를 일반 노예와 같이 생각하며 3년 부리는 명이 다해 죽는다는 것이다. 1863년 영국 노동보고서에는 일곱 살 아이가 하루 15시간 일한다는 내용이 있다. 온종일 일하는 노동자 '전일공(全日工)'에 비해 어린이는 어른의 반만 일할 수 있다고 해서 '반일공(半日工)'이라 불렀다.
국제 어린이날(International Children's Day)이 제정된 것은 1925년이다. 제네바에서 있었던 아동 복지를 위한 세계 회의(World Conference for the Well-being of Children)에서 제정한 것인데 이는 소파 방정환이 색동회를 창립하고 노동절에 맞춰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한 것보다 2년이나 늦다.
어린이날이 5월 5일이 된 것은 일제 때 5월 첫째 일요일에 행사했는데 일제가 탄압해 그만뒀다가 해방 후 다시 시작한 5월 첫째 일요일이 마침 5일이었다. 그런데 어린이날 행사를 방해했던 일본도 5월 5일이 어린이날이다. ‘코도모노히’라고 남자 어린이를 위한 날이다. 일본은 ‘히나마츠리’라고 3월 3일을 여자 어린이날로 따로 두고 있다.
어린이날이 특별히 제정된 나라가 있고 없는 나라도 있다. 일 년 365일 매일이 어린이를 위한 날인 곳도 있고, 단 하루도 어린이에게 허용되지 않은 곳도 있다. 5월은 푸르고 어린이는 어떻게든 자란다. 어린이에 대한 배려는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에 달렸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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