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대표 신문 '르피가로'가 박근혜 대통령 인터뷰 기사를 게재하면서 박 대통령을 <셰익스피어적인 운명(destin shakespearien)의 후계자>라고 소개했다. 셰익스피어적인 운명이라니? 어떤 운명을 말하는지.
르피가로가 박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개인사를 소개하는 별도의 기사를 싣고 `셰익스피어 인물 같은 운명의 후계자'라고 그 제목을 달았다. 신문은 박 대통령이 1974년 프랑스 유학 중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북한 공작원의 총에 맞아 서거한 소식, 아버지도 1979년 암살, 박 대통령 자신도 지난 2006년 지방선거 지원 유세 중 테러를 당했다는 것, 경제기적의 아버지이자 동시에 독재자였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곁에서 일했다는 점, 선거의 여왕이며 결국 젊은 시절을 보냈던 청와대에 다시 돌아왔다는 등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신문은 이런 셰익스피어 작품 속 인물 같은 운명이 보수 유권자들에게는 박 대통령의 후광으로 작용했지만, 젊은 세대는 과거 권위주의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 작품 속 인물 같은 운명이라면 누구를 말하는 걸까.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인 한여름밤의 꿈, 말괄량이 길들이기, 베니스의 상인, 뜻대로 하세요, 십이야 등과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인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등을 봐도 박 대통령과 일치되는 인물을 찾기 힘들다. 결혼도 안 한 대통령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의 운명을 맞출 수도 없고 햄릿처럼 아버지의 죽음이 있지만 결말은 아주 다르다.
이에 박 대통령과 인터뷰한 르피가로의 기자는 <셰익스피어 소설에 나오는 특정 주인공을 빗대서 쓴 말은 아니다>라며 <‘셰익스피어적’이란 형용사는 프랑스에서 드라마틱한 운명적 삶을 지칭하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특징은 인간의 의지로 선택하는 게 아닌, 더 큰 초월적인 운명의 힘으로 진행된다>며 <대통령의 딸로 태어나 부모의 죽음을 목격하고, 평생 결혼하지 않고 정치적 힘을 쌓아 오다가, 마침내 청와대로 다시 돌아온 박 대통령의 삶은 비극과 희극이 교차하는 ‘셰익스피어적 운명’ 그 자체>라고 했다.
아! 그런 거였구나. 프랑스에서 공부한 적 있는 박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가 서거했을 때 프랑스 유학생 신분이었다. 프랑스 언론은 그가 대통령이 되어 프랑스를 다시 방문한 것만 봐도 셰익스피어 소설에 나오는 운명의 주인공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다.
사실, 탁 스치는 느낌으로는 외국 언론이 한국의 대통령을 두고 '운명'이라는 글을 쓴 것 자체가 외국 정상에 대한 인연의 꼬리를 잡으려는 긍정의 노력으로 비치기는 한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운명'이라는 외국 기자의 글을 통해 문득 떠오른 한국 보수매체의 칼럼이 하나 있다. 숫자 9와 18을 갖고 박 대통령의 운명을 이야기한 글인데 내용은 이렇다. <박근혜 대통령은 9와 18이란 숫자와 운명적으로 연결됐다. 9살 때 아버지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18년 동안 권력 안에 있었으며 아버지가 죽고 18년 동안 은둔했다. 1997년 정치에 뛰어든 9년 후 자신이 테러를 당했고 18대 대통령이 됐다.> 그래서 이 글을 쓴 사람의 요지는 박 대통령의 정치 입문 18년이 되는 2015년에는 북한의 도발 위험이 커질 수 있어 국가안보실장, 국방장관, 국정원장을 최강으로 구성하라는 권유였다.
아! 그런 거였구나. 그때는 보수매체의 글이다보니 그러려니 했는데 이제 르피가로의 '운명'과 비춰 그 '운명'이 '꿈보다 해몽'이라는 옛말의 뜻을 새삼 느끼게 한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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