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와 멀린다 게이츠는 이혼하면서 "인생의 다음 단계에서 커플로서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됐다"고 했다. 27년을 함께 산 부부가 환갑이 지난 나이에 '함께 성장할 수 없다'는 게 이혼 사유라니. 그래서 이들의 이혼을 두고 미국인들은 '회색 이혼(gray divorce) 함정에 빠졌다'라고 했다. 회색 이혼이란 미국 전체 이혼율은 떨어지는데 50세 이상에서만 이혼율이 높아지는 걸 설명하는 말이다.
이혼의 절대적 수치는 감소하고 있다. 당연히 그럴 것이 이혼이란 일단 결혼을 해야 할 수 있는 거니까 결혼하는 사람이 감소하면 이혼하는 사람은 당연히 감소한다. 그런데 이혼하는 비율은 는다. 결혼 후 4~5년 이내 혹은 게이츠 부부처럼 결혼 후 20년~30년 사이의 이혼이 늘고 있다. 자식 때문에 참고 살다가 자식이 성인이 되자 이혼하는 것이다.
이번에 캐나다에서 65세 이상의 회색 이혼이 증가해 문제가 된다고 했는데 비슷한 소식은 지난해 호주에서도 들렸다. 그레이 이혼, 황혼 이혼이라고 하는 회색 이혼은 주원인이 '빈 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 )' 때문이다. 성인이 된 자녀가 집을 떠난 빈 둥지에서 쓸쓸함과 삶의 변화를 느끼고 그동안 있었던 자신의 배우자와의 관계를 재평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빈 둥지의 공허함은 남성보다 자식의 양육에 더 깊이 관여한 여성에게 더 크게 다가온다.
이혼의 사유는 다양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이혼신고서에는 항목이 한정됐다. 우리나라 7개 보기는 배우자 부정, 정신적·육체적 학대, 가족 간 불화, 경제 문제, 성격 차이, 건강 문제, 기타, 미상 등이다. 성격 차이가 거의 반을 차지하며 많지만 이 답변을 믿을 건 못 된다. 솔직히 경제적 이유가 이혼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학대나 부정도 제 입으로 까발리기에 뭣하니 가장 무난한 대답인 성격 차이를 선택하는 거다. 중국 당나라 시대에 작성된 이혼장(放妻書)에도 사유를 '성격 차이'라고 했다.
가장 많은 이혼 사유가 경제적 문제라는데 회색 이혼을 하면 이혼 후 여성의 재정적 어려움이 더 크다고 한다. 물론 양측 모두에게 재정적 부담을 주지만 경제적 재건 시간이 부족한 것은 여성이 더 심하다고 한다.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여성에게 더 큰 타격을 준다는데 50세 이상 여성이 이혼 전후에 항우울제 처방을 받는 경우가 급증한다는 통계가 있다.
결혼한 사람 5명 중 2명이 살면서 이혼이나 별거를 경험하고, 살면서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 65%라는 지금, '인내심이 바닥' 나서 이혼하겠다는데 그냥 참고 사시라고 말하는 것도 잘못일 게다. 그렇지만 이혼은 파트너를 잃는 것과 함께 자녀와 연결되는 채널도 잃게 되는 경우가 있어 단순하지 않다.
해가 막 져서 어둑어둑한 황혼 黃昏. 회색 이혼, 황혼 이혼과 인생의 황혼기는 분명 어감이 다르다.
헤럴드 김 종백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
185 | 투표해요. 숨어 있는 시민으로 살지 마요. | hherald | 2014.05.12 |
184 | 단원고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의 편지 | hherald | 2014.05.05 |
183 | 부끄러운 어른도 모자라 더 부끄러운 망언까지... | hherald | 2014.04.28 |
182 | '파시스트'라고 불리기 싫으면... | hherald | 2014.04.14 |
181 | '사랑' 갖고 갈팡질팡하는 국립국어원 | hherald | 2014.04.07 |
180 | 참 오래된 등식, 국산품 애용 = 애국자? | hherald | 2014.03.24 |
179 | <안네의 일기>의 또 다른 박해 | hherald | 2014.03.17 |
178 | 구미시를 박정희시로 하자굽쇼? | hherald | 2014.03.10 |
177 | 노무현 장학금과 정수장학금 | hherald | 2014.03.03 |
176 | 한인회를 위한 변명 | hherald | 2014.02.20 |
175 | 독이었다가 약도 되는 스포츠의 징크스-2월 3일 발행분 | hherald | 2014.02.10 |
174 | 자녀가 이중국적자면 대사 노릇도 못 해먹는다? | hherald | 2014.02.10 |
173 | 뉴욕 맥도날드의 반면교사 | hherald | 2014.01.20 |
172 | 죽기 전에 먹어봐야 할 음식, 돌솥비빔밥 | hherald | 2014.01.13 |
171 | 일자리 병을 앓는 젊은 청춘을 위해 우리는... | hherald | 2014.01.06 |
170 | 낡은 것을 토해내고 새것을 받아 들입시다 | hherald | 2013.12.23 |
169 | '아! 박비어천가' 유신 복고를 노래하라! | hherald | 2013.12.16 |
168 | 호랑이를 위한 변명? | hherald | 2013.12.09 |
167 | 알아서 기는 것에 길들여진 슬픔 | hherald | 2013.12.02 |
166 | 노예제의 망령은 사라지지 않았다 | hherald | 2013.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