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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분수에 등을 돌리고 앉아 동전을 던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로마의 명소, 트레비 분수에 누군가가 빨간색 염료를 넣어 분수대 안의 물이 붉게 변하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경찰과 소방관이 긴급 출동해 양동이로 색이 변한 물을 퍼내 붉은색 물은 사라졌지만, 분수대 한쪽 모서리에 붉은색을 남겨 트레비 분수는 3년 전과 비슷한 수난의 흔적을 또 한 번 남겼다. 트레비 분수의 물이 붉게 물든 것은 2007년에도 있었다. 그라찌아노 세치니라는 예술가가 게릴라 예술을 한답시고 분수에 붉은 염료를 부어 온통 물을 핏빛으로 만든 적이 있다.

 

이처럼 문화재를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반달리즘(Vandalism)이라 하는데 이 말은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이 5세기 중엽 게르만 대이동 때 로마를 침공해 로마 곳곳의 문화재들을 닥치는 대로 파괴한 데서 유래한다. 뚜렷한 이유 없이 행해지는 반달리즘으로 세계 각지의 문화재가 수난을 입는데 어처구니없는 파괴 행위의 기록은 기원전 4세기부터 시작됐다. BC 356년 그리스의 헤로스트라투스란 사람이 아르테미스 신전에 불을 질렀는데 그 이유가 "어차피 나쁜 짓을 하려면 후세까지 알려질 악행을 저질러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아름다운 그리스 최초의 순대리석 신전을 태운 그의 악행은 소원대로 후세까지 알려진다.

 

수난을 겪은 횟수로 치자면 덴마크의 인어공주 동상이 금메달감이다. 페인트가 뿌려지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고 팔이 잘려나간 적이 있고 머리는 두번이나 잘렸었다. 2003년에는 폭탄공격으로 파손돼 바다에 버려지기도 했다. 왕자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을 일방적으로 희생한 인어공주를 반여성주의의 상징으로 여기는 페미니스트들에 이 동상은 꼴사나운 것이어서 공격을 받았다는 추측이 있다.

 

인어공주 못지않게 직접 보면 그렇게 썰렁할 수 없다는 벨기에의 오줌싸개 소년도 여러 차례 수난을 겪었는데 주로 침략자에게 약탈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600년째 계속 오줌 싸고 있는 꼬마 줄리앙이라는 이 청동상은 1745년 영국이 약탈했다가 1747년에는 다시 프랑스가 뺏었다. 루이 15세가 사죄의 의미로 화려한 후작 옷을 입혀 반환했지만 1817년 프랑스인이 훔쳐가 잘린 채 발견됐다. 지금 있는 것은 그때 조각난 것을 다시 붙여 만든 것이다. 벨기에는 이 볼품없는 동상을 스토리를 입혀 세계적인 문화재를 만들었고 때때로 동상을 통해 자신들의 의지를 나타내기도 하는데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반전주의의 녹색 옷을 입혀 미국의 침공을 반대했던 벨기에인의 의지를 표현하기도 했다.

 

트레비 분수의 수난을 얘기하다 보니 이번에 물이 핏빛으로 변하는 수난보다 더한 수난, 그러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트레비 분수의 수난이 떠오른다. 분수에 던져진 동전은 정기적으로 수집돼 자선 단체로 보내 에이즈 환자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데, 관광객은 여전한데 계속 기부액이 줄어 조사해보니 분수 청소부들이 11만 유로나 빼돌렸다는 것이다. 그것도 트레비 분수의 좋은 의미를 훼손하는 반달리즘이 아닐까.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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