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제자가 스승의 은혜를 기리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날인데, '스승의 날'이 외국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그 유래가 47년 전 시골의 한 여학생이 아픈 선생님들을 방문하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1963년 충남 강경여고의 윤석란이란 여학생은 평소 병석에 누워 계신 선생님들을 방문해 왔는데 당시 자신이 속해 활동하던 청소년 적십자단(JRC:지금 RCY의 옛 명칭)의 친구들에게 함께 선생님을 방문하자고 제안했다. 친구들이 기꺼이 동참했고 아픈 선생님만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퇴직한 모든 선생님을 방문하는 날을 만들기로 했다. 이것이 충남 지역 전체로 퍼져 1963년 9월 21일이 충남 지역 ‘은사의 날’로 정해졌다.
충남 지역 행사가 2년 뒤 전국 행사로 발전했다. 전국 청소년 적십자단 학생들은 ‘은사의 날’을 '스승의 날'로 바꾸고 기념일도 5월 15일 바꿨다. 5월 15일은 세종대왕 탄신일로 세종대왕은 우리나라 문화 교육발전에 큰 공헌을 해 민족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였다.
1965년 5월 15일 아침, 서울을 시작으로 제1회 스승의 날 깜짝파티가 각급 학교 정문에서 벌어진다. 학생들은 아침 일찍 등교해 ‘스승의 날, 선생님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리본이 달린 장미꽃을 들고 교문에서 선생님을 맞았다. 스승의 날인지 모르고 학교에 온 선생님들은 감격했다. 이때부터 전국적으로 리본 달기, 선생님 구두 닦기, 교무실 청소하기, 퇴직 교사 찾아가기, 병문안 가기 등 자발적인 행사가 잇달았다. 시골마을 한 여학생이 제안한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자는 운동이, 전국의 학생이 선생님을 공경하는 자발적 표현 운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런데 스승이 날은 박정희 정권 시대에 규제 대상이 됐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에서부터 <서기 1968년 12월 5일 대통령 박정희>로 끝나는 '국민교육헌장'이 나오면서 모든 교육 관련 행사가 '국민교육헌장선포일'인 12월 5일로 바뀌고 '스승의 날' 행사도 규제했다. 국민을 훈육의 대상으로 삼고 국가주의를 강요하며, 민주보다는 반공을 앞세우는 박정희의 통치이데올로기가 그대로 담긴 글을 초등학생까지 줄줄이 외우게 강요하면서, 병석에 누워 계신 선생님들을 방문했던 어린 학생의 순수한 의미까지 규제 대상으로 한 것이다.
박정희 세대가 끝나고 1982년 정부는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기념일로 제정했다. 스승의 날 발원지인 충남 강경고등학교에는 2000년 스승의 날 기념탑이 세워졌다. ‘스승의 날’을 창안해 전국적 운동으로 확산시킨 윤석란 학생은 지금 '윤 파트리시아 수녀'가 되어 충남의 어느 교육관에서 천주교 신자 '신앙의 스승' 역할을 하고 있다.
스승의 날. 처음 만들었을 때의 훈훈한 감동이 계속되면 그 얼마나 좋은 날인가.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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