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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삶은 계란을 먹는 아이는 소금이 필요하다. 그래서 소금을 달라고 해야 하는데 입에서 말이 뱅뱅 돈다. 소금인지 설탕인지 헷갈리기 때문에. 하얀색인 것은 분명한 데 이런 경우에 어디에 찍어 먹어야 하는지 모른다. SALT와 SUGAR는 구별하겠는 데 소금인지, 설탕인지 도저히 모른다. 그래서 아이는 불편하다. 말을 몰라서 생활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다문화가정의 얘기가 아니다. 부모가 엄연히 한국인인 영국 한인사회 아이들의 모습이다. 한국어를 영어의 조사쯤으로 생각하는 분위기의 가정이나, 아예 아이에게 일찍 영어를 깨우치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부모가 오히려 앞장서 집에서 영어만 사용하는 가정에서 발생하는 슬픈 촌극이다.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구름이다."라고 표현할 때 그것은 아이의 애교가 아니다. 어린아이니까 웃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 교과서에 연기라는 단어가 나오는 연령의 아이라면 그 아이는 어휘력이 부족한 것이다. 내 아이가 한국어의 어휘력이 부족하다면 '외국에 사는 아이가 저 정도면 그래도 대단하지'라고 웃을 일이 아니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영국 한인사회의 학부모들은 만약 내 아이가 영어에서 딸리면 할 수 있는 모든 대책을 강구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어에서 딸리는 아이를 위해서도 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두 개 국어에 능숙할 수 있는 아이를 언어 장애아로 만드는 누를 부모의 착각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한국어는 아이의 정체성과도 밀접하다.

 

영국의 한인사회가 한글 교육이 어려운 상황에 있다면 또 다르다. 그러나 런던에만 3개의 한글학교가 있다. 한국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하는 곳이다. 모든 한글학교가 교육 계획의 짜임새를 갖추고 자격 있는 교사가 아이를 가르치고 있다. 물론 교과서만 겉핥기로 배우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교과서만 겉핥기로 배운다고 쳐도 교과서는 그 또래 아이가 알아야 할 어휘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한글학교를 다닌 아이는 자연스럽게 어휘력이 발달한다. 말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 그건 사람이 당연히 갖춰야 할 능력이다. 어떠신지. 그토록 귀한 자식인데 이런 당연한 능력이 결핍돼 있다면.

 

과거 영국에 한국학교가 없었던 시절, 많은 이의 열정과 헌신으로 생겼던 한글학교가 이제 꽤 긴 역사를 가져 더 큰 나무가 됐으리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점점 학부모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고 해 안타깝다. 아무리 재영 한인의 수가 줄어도 엄청나게 줄어든 학생 수만큼 급격히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인데 왠지 학부모의 무관심이 한글교육에 대한 무관심으로 느껴져 더 안타깝다.

 

왜 그럴까. 한국에 가보면 외국에서 살았다고 한국어가 서툰 것을 용납하는 분위기는 아닌데. 이 정도 영어 하는 얘들 한국에도 많던데. 결국 이도저도 아닌 얘를 만드는 건데. 왜 한글학교를 이용하지 않을까.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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