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으로 점철된 역사를 가져 불행에 너무 익숙한 나라, 아이티에 재앙이 닥쳤다. 중남미 카리브 해의 가난한 나라를 덮친 규모 7.0의 강진은 수십만 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외세와 결탁한 부패정권들의 수탈로 빈곤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해 먹을 것이 없어 진흙과자를 먹던 아이들이 무너진 건물에 깔려 숨지고, 시체는 넘쳐나 중장비로 옮겨지고 있다.
이런 비극을 두고 이상한 신앙관을 가진 미국의 팻 로버트슨 목사가 <아이티가 지진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는 것은 악마의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험담을 했다. 대표적 텔레반젤리스트(텔레비전을 선교도구로 활용하는 부흥사)인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TV에 출연해 <아이티가 악마를 찾아가 나폴레옹으로부터 자기를 독립시켜 주면 당신을 섬기겠다고 맹세해 독립을 쟁취했지만 악마의 저주에 시달리고 있다. 인근 도미니카공화국은 잘사는데 아이티는 무척 가난하다>며 부두교를 믿는 것과 같은 악마의 사슬로 자연 재앙과 가난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했다.
로버트슨 목사의 망발은 처음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무차별 폭격할 때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1995년 팔레스타인과 평화를 추구했던 이츠하크 라빈 전 이스라엘 총리 암살과 2006년 샤론 전 총리의 뇌출혈로 인한 사망도 <신의 땅을 나눈 데 대한 신의 심판>이라고 주장했다. 부시 대통령 시절에는 <암살이 전쟁보다 싸게 먹힌다. 미국 정보 요원들이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을 암살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독설을 하며 반드시 ‘신의 이름’을 들먹인다. 9·11 사건을 <무신론자, 낙태주의자, 동성애자들을 벌하고 우리 사회를 보다 안전하게 만들라는 신의 채찍>이라고 했다.
아이티의 비극은 악마의 저주 때문이 아니다. 지진은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지만 인간의 대비에 따라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재해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이후 500년 넘게 이어진 이 섬나라에 대한 외세의 수탈은 지진의 피해를 줄일 수도 없는 황폐한 자연과 국가 시스템을 갖게 한 것이다. 프랑스로 부터 독립을 쟁취한 아이티를 두고 흑인들은 식인종이며 은혜를 모르는 야만인으로 폄하하며 국제적으로 고립되게 만든 것이 미국이고 '민주주의'라는 미명아래 아이티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경제를 지배한 것도 미국이었다. 2차 대전 이후 짐짓 물러나는 척하며 자기 입맛에 맞는 쿠데타 정권을 지원하고 30년 독재의 뒤를 봐준 미국 때문에 아이티는 인구의 50%가 하루 1달러로 연명하는 서반아의 최빈국이 된 것이다. 로버트슨 목사 같은 복음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들에게 세계 속에 미국의 패권을 만들 것을 종용하며 이런 구도를 압박했다. 아이티 비극의 근원은 악마의 저주가 아니라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어떤 블로그에 이런 글이 떠있다. <이번 아이티에서 벌어진 대지진의 경우는 오래전부터 부두교라는 해괴한 토속신앙이 없어지지 않고 있어서 하나님의 분노가 내려온 것일 뿐입니다. 허나 우리나라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도와 절실한 신앙으로서 하나님을 절대 군주로 믿기 때문에 대지진 같은 저주가 내려오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비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들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기가 찬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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