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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김장훈법'은 누구를 위한 법일까

hherald 2011.09.08 11:29 조회 수 : 1904


기부를 많이 한 사람들을 ‘명예기부자’로 선정해 나중에 어려움을 겪게 됐을 때 국가에서 생활을 보장하는 ’명예기부자법’ 제정이 추진된다. 30억 원 이상 기부자가 사업실패 등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면 보조금 진료비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10억 원 이상 기부자도 일정액을 지원한다. 이 법은 지난 10년간 100억 원 넘게 기부한 가수 김장훈 씨 이름을 따서 '김장훈법'으로도 불린다. 한나라당이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해 정기국회에서 중점 추진키로 했다고 한다.

기부문화. 흔히 우리 사회의 거부라는 재벌그룹 오너들은 기부에 인색하다는 비난을 받는다. 국내 기업의 기부금 규모는 해외 주요 기업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지만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처럼 기업인이 개인 재산을 내놓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전 세계 억만장자들 사이에 생전 또는 사후에 최소한 재산 중 절반을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기부 서약’ 캠페인이 한창이다 보니 우리나라 가진 자들에게도 이처럼 회삿돈이 아닌 개인 기부가 활발히 이뤄지는 성숙한 기부 문화 절실하다는 소리가 자주 나오는 것이다.

기부가 가장 활발한 나라 중 하나라는 미국 기부문화를 만든 장본인은 강철왕 카네기다. 5만 6천 개가 넘는다는 미국 자선단체의 시발점이 카네기다. 그는 인간의 일생은 두 시기가 있는데 전반부는 부를 획득하는 시기요, 후반부는 부를 나누는 시기라 했다. 그는 자신이 쓴 책 <부의 복음>에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 자선 기부의 롤모델(role model)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첫 고액 기부자는 경주 최부잣집이다. 300년간 만석꾼을 지내면서 어려운 이웃을 돕고 독립운동을 후원해 큰 존경을 받았던 조선시대 최고의 부자 경주 최부잣집의 마지막 최부자 최준 선생은 그때까지 남은 전 재산을 처분해 대구대학교와 계림학숙을 세웠다.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선생은 1970년대 자선 기부의 롤모델이다.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설립한 유한재단은 현재까지 교육 장학사업 등을 이끌어 오고 있다. 부전여전이랄까.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 1991년 외동딸 유재라 여사도 전 재산을 유한재단에 기증했다. 

기부하고 생활이 어렵게 된 사람을 나라가 도와야 하는 것은 맞다. 사람 팔자 알 수 없듯 적십자를 만든 앙리 뒤낭이 그랬다. 모든 재산을 들여 적십자를 만들었지만 사업에 실패해 생활보호자로 전락했다. 첫 노벨평화상 수상자였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고 연금을 받아 연명하다 초라하게 죽었다. 

'김장훈법'으로 기부문화를 활성화한다는 취지는 좋으나 30억 원 이상 기부할 수 있는 개인이 얼마나 될까 의문이 간다. 소위 '재능 기부'가 가능한 김장훈 씨 같은 나름대로 능력 있는 기부천사가 아닌 다음에야 재벌에 국한된 얘기일 것이다. 가끔 언론에 오르는 노인 기부자의 경우처럼 평생 시장 좌판에서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해도 수십억이 되지 않으면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혜택이있을까. 왠지 생색만 내는 법안이라는 느낌이 든다. 기부 액수와 무관하게 그렇게 기부한 마음에 대한 보상으로 '김장훈법'의 혜택이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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