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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加不面死'로 본 시대상 비틀기

hherald 2011.08.22 17:19 조회 수 : 1918




지난 광복절, 한국의 어느 자장면집에 '加不面死'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렸다. 현수막 위에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을 지적하는 문구가 있고 '加'자에는 세로획 하나를 더 그어 '까'를 표현했으니까 '까불면 죽는다'는 뜻이다. 이 현수막을 건 사람은 수십 년째 계속되는 독도 문제에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어 자기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이렇게라도 나선 것이라고 했다. 또 그는 "일본이 도발할 때만 대응할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평소에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4년 임기 동안 독도 문제에서 '조용한 외교'로 일관하는 대응이 못마땅했던 국민의 한 사람이 내건 사자성어 '加不面死'가 통쾌하고, 공감을 얻었다면 그 말이 누구를 향했는지도 사람마다 해석하기 나름 아닐까.

사자성어를 원래의 뜻과 달리 해석해 재미를 주는 것이 많이 유행한다. 우스개 소리의 소재로 쓰이지만, 사자성어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도 시대에 따라 달리 해석되고 유행하는 듯하다. 

거의 30년이 다 됐지만 내가 군에 입대했을 때 어느 고참이 '군계일학'의 뜻을 알려줬다. '군대에서는 계급이 일단 학력보다 우선'이라는 뜻이다. 당시에는 대학에서 교련 과목을 이수하면 군 복무기간이 줄어들어 대학을 다니지 않은 고참보다 먼저 제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표시 내지 말고 생활하라고 마음씨 좋은 고참이 일러준 것이다.

군사정권 시절에 대학을 다니고 군대를 갔다 온 내 경험으로 당시 유행했던 사자성어를 통한 시대 비틀기는 대부분 정권의 수뇌부에 연관된 것이었다. '부전자전'은 '아버지가 전씨면 아들도 전씨다'로, '이심전심'은 '이순자가 심심하면 전두환도 심심하다'로 했다. 노태우 대통령의 '보통사람'이라는 말이 도저히 믿기지 않던 시절, '보기만 해서는 통 알수 없는 사람'으로 비틀어 해석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본다면 참 소심한 복수로 보일지도 모르나 당시 시대상을 충분히 보여주는 사자성어를 통한 시대상 비틀기였다. 

지금은 꽤 수준 높은 것이 많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조삼모사(朝三暮四)가 압권이었다. 원숭이에게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 준다는 데서 유래해 ‘눈앞에 보이는 차이만 알고 결과가 같은 것을 모르는 것’을 비유하거나 ‘간사한 꾀로 남을 속이고 농락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여기의 모(暮)는 '저물 모'다. 그런데 이 '모'와 사(四)를 바꿔 조삼모사(朝三眸死)가 나왔다. '조선일보(朝)를 세 번(三) 보면 눈동자(眸)가 죽는다(死)'는 뜻으로 불량한 글이나 신문을 보면 사람이 생기를 잃고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됨을 경고하는 말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사자성어의 재해석도 유머를 너머 원래 사자성어의 수준이다.

최근 한국에 비가 많이 왔는데 수해를 입은 사람을 두고 '이 정도 비가 오면 당해낼 도시가 없다' '100년만의 폭우' '이것은 인재가 아니라 천재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등의 말이 정치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위로의 말들이었다. 그래서 이를 압축해 어느 네티즌이 쓴 사자성어가 '운수소관(運數所關)'이었다. 내 탓이 아니라며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의 머리에 들어차 있는 사자성어. 바로 운수소관.

우왕좌왕하는 여권의 독도 외교에 일침을 가한 자장면집 주인의 '加不面死'. 답답한 실패의 외교를 보다보다 그 현수막을 걸기까지 오죽 애가 탔을까. 그런데 그런 국민의 심정을 모르니 오죽 애가 더 탔을까.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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