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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갈 곳 없는 노인들

hherald 2011.07.27 16:17 조회 수 : 2167




지난주 어느 날 점심시간. 유미회관에 17분의 노인이 모였다. 유미회관 주인 내외가 일 년에 두 번씩 영국에 사는 한인 노인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작은 선물을 주는 일종의 경로잔치에 초대된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노인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옛노래를 부르며 어깨춤도 췄다. 

이 모임이 끝나고 참석했던 노인 한 분이 전화를 했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준 유미회관에 무척 고맙다고 했다. 그래서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고 했다. 무슨 광고의 카피같은 "좋았는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는 그 말은 '헤럴드 단상'에서 꼭 알려 달라는 압박으로 들렸다. 하지만 좋은 일인데 못 할 것도 없지.

한인헤럴드가 대신 고맙다는 인사를 해달라는 비슷한 부탁이 얼마 전에도 있었는데 그때는 가이드협회가 마련한 효도관광을 다녀온 뒤였다. 구경 잘하고 잘 먹고 잘 다녀왔다는 자랑을 한참 하다가 고맙다는 표현을 하고 싶은데 할 방법이 없으니 신문사에 부탁한다는 것이다. '예, 예' 했기에 이번에 한자리에 때운다. 이 글에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노인분들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관심을 가져준 것에 더 고마워했다.

최근의 이런 행사에 유독 고마워하는 이유는 한인 노인들이 서로 오랜만에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요즘 한인 노인들은 갈 곳이 없다. 노인들이 모여 함께 식사를 만들어 먹고 담소를 나누던 노인정이 없어졌기 때문에 모일 곳이 없고 갈 곳이 없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면 반가운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어 그 자리가 그렇게 고마운 것이다. 가슴 짠한 고마움이다. 노인정 하나 만들지 못하고, 있던 노인정도 지켜주지 못하고, 우리는 한인사회에 몇 분 되지 않는 노인을 갈 곳 없는 신세로 만들어 홀대하고 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다. 내리사랑은 자연의 법칙처럼 자연스럽다. 주는 쪽도 받는 쪽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정말 치사랑은 어렵다. 아랫세대가 윗세대에게 쏟는 치사랑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니어서 어렵다. 치사랑을 만들려면 가르쳐야 한다. 치사랑을 실천하는 아랫세대의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야 한다. 치사랑을 베푸는 모습을 보고 배워야 한다. 치사랑을 가르치지 않고 그냥 두면 우리가 반드시 되돌려 받는다. 우리도 예외 없이 노인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어느 신문에서 '동방예의지국'인 한국에서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가 점점 사라져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욕을 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소개하면서 노인학대 신고건수가 전년도보다 증가했다는 자료까지 들이댔다. 멀리 갈 것 없이 영국에서, 뉴몰든에서, 노인정에서 쫒겨 나와 갈 곳 잃은 한인 노인의 모습을 현지인의 눈으로 보면 어떻게 표현될까. 뭣에 홀린듯 기를 써서 그리 급박하게 한인회관을 만들면서 그곳에 노인정 한쪽 마련하지 못한 우리들의 야박한 치사랑을 어떻게 볼까.

갈 곳 없는 어른들. 그 어른의 모습은 우리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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