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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꽃망울 같은 나이 수줍은 연지 찍고 / 하얀 날개 훨훨 날아  이역만리 독일 땅에 / 어둠의 역경 이겨낸 긍지의 파독 간호사
언제나 정서 불안 눈치 슬슬 더듬더듬 / 소독물에 밴 손은 거칠 대로 거칠었고 / 달빛에 걸린 그리움은 투명한 눈물이었다
가난한 나의 영혼 설움 속에 찾은 보물 / 흑인 아닌 흑인 남편 자랑스런 두 아들 / 대한의 뿌릴 독일 땅에 옹골차게 내렸네
억겁의 세월 속에 푸른 청춘 묻어가며 / 근면히 성실하게 온 힘 다해 살았으매 / 기나긴 대장정의 삶 굳세게 만들었다
아름드리 사랑으로 느지막 꿈을 향해 / 홀씨처럼 작은 소망 하얀 날개 펼치며 / 청정한 생각의 조각들을 꽃 자수로 놓고 싶은
언젠가 내 숨소리 발자국이 멈추는 날 / 나의 꿈 나의 뼈는 독일 땅에 묻히려나 / 영혼은 숨 죽은 그리운 고향을 하늘거리리

 

강정희의 '길'이란 연시조다. 시조 시인은 '효린'이란 호를 가졌다. 요즘 여류 女流라는 말을 쓰지 않는데 만나본 느낌(나이가 69세라는 말을 듣고나니)은 아주 젊은 할머니 시인이라고 할까. 6월 7일 영국에서 열린 세계 전통시인 예술축제에서 직접 낭독하는 걸 들었는데 이날 배포된 <시조의 향기>라는 작품집에 찾아보니 이 시조는 실려있지 않아 행사 후 찾아가 부탁해 낭독했던 원고를 탁자에 놓고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다. 

 

단상에서 소개하려고 작정했던 터라 헤럴드단상을 쓰려고 휴대폰 화면을 보면서 한 연 한 연 적었다. 시조를 따라 적다보니 그날 잠시 나눈 얘기 속에 등장한 <꽃망울 같은 나이>의 19세의 한국 소녀가 <숨소리 멈추는 날>로 향해 가는 50년의 세월을 같이 걸으며 보는 느낌이다. 각 연마다 그가 만들고 그렸을 세월의 인고와 겪고 이룬 역사가 어렵지 않게 보인다. <하얀 날개>의 파독 간호사로 와서 <불안>하고 <눈치 슬슬> 보던 시절, <달빛에 걸린 그리움은> 당연히 <눈물이> 되었을테지. <흑인 아닌 흑인>이 된 고된 노동의 광부 <남편>을 만나 <자랑스런 두 아들>이란 <보물>을 얻었다고 자랑한다. <근면>, <성실>에 <청춘>을 묻어 <삶>은 <굳세>졌고 이제 <청정한 생각의 조각들을> 자신의 언어와 문체로 표현된 <꽃 자수로 놓고 싶>다는 <소망>과 같은 <느지막 꿈>을 꾼다. <언젠가> 그<날>이 오고 <꿈>과 <뼈>가 어디에 묻혀도 시인의 <영혼>은 <고향>의 하늘을 <하늘>거릴 거라고 한다. 제목이 '길'인 것은 당연하다.

 

그는 지금 재독 수필가, 시인, 시조 시인, 소설가로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지만 이 모두가 은퇴 후 최근에 이뤘다고 한다. 1969년 간호사로 와서 독일 생활 50년이 됐다. 2010년 글을 쓰기 시작해 2016년에 수필, 소설, 시, 시조 모두 등단했다고. 자서전 '네 엄마는 파독 간호사', 시집 '하얀 날개'가 있다. 시집 제목도 한결같이 간호사 느낌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되어도 오히려 더 역동하는 이런 글쓰기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국에 사는 우리는 뿌리를 찾는 수구초심 首丘初心이 그 힘이 되고 문학의 샘이 된다고 본다.  그래서 할머니 시조 한 편 더 소개한다. 노인회 회장인 임선화 시인의 '혈통'이란 시조다. 역시 화두는 뿌리다.

 

휘청 휘청 나무 가지 강풍에 휘달리다 / 더러는 찢기우고 부러져 버려지나 / 뿌리는 침묵 속에서 붉은 피 지켜간다 

 

헤럴드 김 종백단상.JPG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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