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타임스가 한국 청년들이 취업난으로 공무원 시험에 몰린다고 소개하면서 한국의 공무원 시험 합격이 하버드대 합격보다 더 어렵다고 비유했다. 4953명을 뽑는 공무원시험에 20만 명 넘게 응시해 합격률이 2.4%로 2018년 하버드대학 신입생 합격률 4.59%보다 2배 이상이라고. 신문은 한국 젊은이들이 현실적으로 훨씬 더 안정적인 정부 일자리를 좇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공무원 되기 정말 힘들다. 내가 말해봐야 그 어려움을 겉핥기라도 할까마는 공시생(공무원시험준비생)이 되면 '14시간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하루 14시간 공부해야 합격한다는 거다. 그래서 ‘세븐일레븐 족'이 된다는데 오전 7시부터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이들이다. 한국 주민센터에 있는 젊은 공무원들도 다 그렇게 공부해서 합격한 거다. 100명 중 2명 남짓의 관문을 통과했다.
워낙 많은 공시생이 있다 보니 시험이 사람을 선발하는 과정이 아니라 떨어뜨리려 있다는 말이 나온다. 적은 문제로 많은 사람의 합격 불합격을 갈라야 하니 변별력 있는 문제 수준을 넘어 그 변별력이 과연 납득할 만한 수준이었는지도 종종 말이 많다. 올해 서울시 공무원 시험 후 어느 한국사 스타강사가 욕을 하면서까지 문제 삼은 문제가 있다. 우리도 한 번 풀어볼까요?
고려 후기 역사서를 시간순으로 옳게 배열한 것은?
ㄱ. 민지의 <본조편년강목> ㄴ. 이제현의 <사략>
ㄷ. 원부, 허공의 <고금록> ㄹ. 이승휴의 <제왕운기>
나는 일단 항복했다. 영국에 사는 한인 중 일반인은 어림없고 한글학교 선생님도 어려워할 듯. 그런데 이런 문제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책들이 발간된 연도까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말인데 과연 이 문제가 변별력이 있을까. 모든 번호의 정답률이 25%로 나올 이 문제는 모두가 찍었다는 뜻인데 공부를 열심히 하든 않든 어차피 모르는 문제라는 말이다. 어떻게든 당락을 결정해야 하니 이런 문제를 냈다는 말은 시험의 변별력을 모르는 이가 하는 변명이다.
각설하고, 공시생 중에는 고등학생도 있고 50대도 있다. 60세까지 정년이 법으로 보장되니 향후 40년을 보는 공딩(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은 대학을 나와서 백수가 되느니 일찍 취직하겠다고 나선다. 이래저래 모인 공시생이 44만 명. 공시생은 평소 대학교·대학원에 다니거나 학원 수강 중이란 이유로 ‘비경제 활동인구’로 있다가 공무원시험 원서를 내는 순간 '실업자'가 되지만 시험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취업자'가 되기도 한다. 정말 얼마나 많은 젊은이가 공시생으로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해마다 떨어져도 1년만 더 하면 될 것 같은 마음이 유혹이고 중독인 걸 알아도 늘 아쉬움에 다시 시작한다고들 한다.
우리나라 중학생 4명 중 1명은 꿈이 공무원이라고 말한다. 안정된 직업과 안정된 보수에 대한 열망, 해고당하지 않고 정년까지 생활하는 삶,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또는 청년들의 진정한 꿈이 그것이었을까, 그런 꿈을 꾸어야만 하는 세상이 된 걸까. 하버드대 합격보다 어렵다는데 근본적인 해결책은 더더욱 어려운가 보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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