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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운전에 졸업이 있어야 할까? 왜냐하면 나이가 들면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직접 몸으로 하는 대응 능력도 떨어지니 운전 중 우발적 상황에 대처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상황에서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우는데 시간이 2배 걸린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노인 운전은 2배나 위험하다는 소리로 들리기에 십상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연령이 되면 스스로 운전을 그만둘 줄 알아야 한다는 '운전 졸업'이란 말이 나오게 된 거다. 세계가 고령사회로 접어들고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율이 급증하니까 노인운전의 교통사고 위험을 우려하는 소리는 세계 어느 국가에서나 들린다.

 

 

며칠 전 영국 여왕의 남편인 필립공이 자신의 차 랜드로버를 몰고 가다 기아차를 들이받고 전복되는 사고가 있었다. 상대 차에 탄 여성 둘은 병원 치료를 받고 퇴원했는데 필립공은 멀쩡했다. 진짜 멀쩡했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사고를 낸 이틀 뒤 왕실별장으로 새 랜드로버 SUV 차량이 배달되자 이 차를 몰고 사고 현장 인근 지역을 운전하는 모습이 찍힌 것이다. 그런데 아뿔사!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모습까지 고스란히 찍혔다. 필립공은 평소 운전하는 걸 무척 좋아한다고 알려졌는데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왔을 때 그들 부부를 태우고 윈저성까지 자신이 직접 운전한 바 있다. 그런데 운전 좋아하는 건 개인 취향이라 치고 이번 일로 영국에서 노인운전에 대한 어떤 제한을 두는 모종의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만약 어떤 조치가 나온다면 필립공이 덤터기를 쓸 처지가 됐다. 필립공의 안전띠 미착용 운전과 사고 소식에 영국의 교통방송 진행자가 <엘리자베스 여왕이 남편의 면허증을 스완지로 보내기를 기대하자>는 내용의 언론 기고까지 해 1921년생으로 백수白壽에 이른 공公의 운전 사랑이 최대 위기에 몰렸다.

 

고령사회가 되면 노인 운전이 사회 문제가 된다. 고령 운전자 사고 비중이 높아지는 게 당연한 현상이다. 그렇다고 나이만을 잣대로 운전하는 걸 규제할 수는 없다. "어르신 그만하면 이제 운전을 졸업해야 하지 않을까요?"했다가는 오히려 노인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한다. 운전하지 않는 노인이 운전하는 노인보다 병원 신세를 질 확률이 4배나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노인에게 운전하지 말라고 하는 순간 더 노인이 되어 버린다는 뜻이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는 스스로 판단해서 운전 면허증을 반납하는 노인들이 나오기를 바라고 시행하는 제도가 있고 그에 따라 운전을 졸업하는 노인이 많이 나온다. 고령 운전자 스스로 '운전 졸업'을 선택하는 것이다. 자신의 신체 기능, 인지 능력을 알고 스스로 면허를 반납한다. 일본에선 이미 20년 전부터 면허증을 자진 반납하는 고령자에게 택시 요금을 할인해 주거나 노인에게 필요한 용품을 살 때 할인해주는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한 해 35만 명 정도의 노인이 운전면허증을 반납했다는데 아마 그에 상응하는 혜택이 있기 때문일 거다.

 

영국은 만 70세가 넘으면 의료 검진을 받아야 운전면허를 연장할 수 있다. 70세가 넘으면 3년마다 갱신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필립공의 사고 때문에 노인에게 적용되는 규정이 더 빡빡해진다면(면허 갱신 주기가 더 단축되거나 의사 소견서를 더 강력히 요구하는 등) 그를 탓할까? 노인이 운전을 졸업해도 될 만큼 사회적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물론 더 설득력이 있겠지만...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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