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己亥年이 밝았다. 60갑자甲子에 따라 돼지띠인데 올해는 '황금 돼지의 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띠에 색깔을 맞춰 마케팅하는 것이 유행하고 먹힌다. 띠에 색깔을 맞추는 것은 청靑·적赤·황黃·백白·흑黑 다섯 색(흔히 오방색이라고 부른다)이 2년 간격으로 그해의 띠에 붙는데(갑을甲乙은 청, 병정丙丁은 적, 무기戊己는 황, 경신庚辛은 백, 임계壬癸는 흑) 예를 들어 내가 태어난 1962년은 흑색이라 검은 호랑이, 다음 해는 토끼띠로 당연히 검은 토끼, 1964년은 청색이니 푸른 용, 1965년은 푸른 뱀, 1966년은 순서에 따라 적색이니 붉은 말, 1967년은 붉은 양... 이런 식이다. 그러니까 어느 해 어떤 띠도 모두 색깔이 있고 12간지 모든 동물이 다섯 가지 색깔로 해마다 매번 바뀌는 것이다. 용 한 마리가 청룡으로 태어나 붉은용 황금용 백룡 흑룡이 됐다가 다시 청룡으로 돌아오면 환갑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띠 색깔 마케팅이 시작된 것이 2007년 돼지해부터라고들 한다. (1988년을 쌍용의 해라고 용 새긴 은반지 팔아먹던 상술은 그냥 사기성 마케팅이지 띠 색깔 마케팅이 아니다) 누군가의 기발한 상술이 시작된 당시 기록들을 보면 <6백 년 만에 돌아오는 황금 돼지의 해에 아이들을 낳아라>, <재물이 넝쿨째 들어온다>는 속설이 있다며 황금 돼지를 형상화한 상품 마케팅이 넘쳐났다. 그런데 황금 돼지의 해가 600년 만에 돌아온다는 것부터 계산할 수 없었고 2007년은 적색으로 붉은 돼지의 해였다. 황색 돼지는 차라리 올해다. 그런데 황색도 흙土을 의미하지 금金을 의미하는 색은 백白이다. 그래서 올해는 황금 돼지보다 흙돼지가 더 정확할지 모른다. 흙土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예로 부터 최상의 색으로 황제만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어떤 색과 띠가 상징하는 동물에 의미를 붙이는 건 일본의 영향이다. 대표적인 것이 '백말띠 여성이 드세다'는 것인데 여자가 팔자가 세다, 남편을 잡아먹는 사나운 여자, 라는 식의 속설은 일본에서 왔다. 그래서 1966년에 일본에서는 여자들이 출산을 미뤄 나중에 1966년생 여선생이 부족했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우리도 1966년 백말띠 딸이 태어날까 걱정하는 산모들을 위해 당시 신문들이 '그것은 모두 미신이다'라는 특집을 내고 <남존여비 사상이 철저한 일본인들이 여자들 기를 꺾으려고 만든 말>이라 알렸다고 한다. 더욱이 <조선 시대 4명의 말띠 왕비가 있었다>고 소개해 말띠 여자의 팔자가 세다면 말띠 왕비를 간택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1966년은 백말띠가 아니다. 붉은 말이다. 그렇다 해도 누군가가 말을 만들면 붉은 말이니까 역시 재앙을 뜻한다고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삼국지의 여포나 관우가 탄 말이 적토마라는데 붉은 말이 최고의 말이 아니냐는 말을 만들 수도 있다.
띠를 갖고 마케팅을 한다고 과학적 근거가 없다느니 하면서 맞서자는 게 아니다. 그건 소위 예능으로 웃어넘기자는데 다큐멘타리로 정색하고 대꾸하는 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속설의 해석이 다수를 위한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해석이 아니라 소수의 이익을 위한 암울하고 위협적인 해석이 되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터무니없는 소모적 미신에 또 다른 권위를 얹어주는 어리석음이 되기 때문이다.
올해가 황금 돼지면 어떻고 흙 돼지면 또 어쩌랴.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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