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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유케'와 '육회'는 다르다

hherald 2011.05.09 17:06 조회 수 : 7135




육회 때문에 일본이 시끄럽다. 육회를 먹고 식중독을 일으킨 환자가 백 명이 넘는데 이미 네 명이 목숨을 잃었다. 중환자가 많아 알 수 없다. 육회를 팔았던 일본 고기구이 체인점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익혀 먹어야 하는 조리용 소고기로 생식인 육회를 만든 혐의다. 아니, 그들이 만든 것은 '육회'가 아니라 '유케'다.

육회는 익히지 않은 소고기를 얇게 저미고 가늘게 채로 썰어 갖은 양념으로 버무려 먹는 한국 요리다. 19세기 저서인 <시의전서>에 지금과 유사한 육회 요리법이 나오고, 이보다 2백년 전에 나온 <지봉유설>에 생고기를 먹는 조선인을 놀리는 중국인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육회의 꽤 전통 있는 한국 음식임이 분명하다.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역사적 증표가 있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로 꼽히는 진주성 전투에 이미 육회가 있었으니 적어도 16세기까지는 거슬러 올라간다. 충절과 의기로 뭉쳐 성을 지키려 필사의 싸움을 했던 진주성 대첩. 치열한 전쟁통에 먹을 것을 대기가 쉽지 않을 때, 음식을 담당했던 부녀자들이 가장 흔하게 준비할 수 있던 음식은 이것저것 나물을 한데 모아 비벼 먹는 비빔밥이 최고였다. 그런데 싸우는 병사가 풀만 먹고 힘을 낼 수 있을까. 다행히 진주 일대에는 소가 많아 갓 잡은 소의 싱싱한 살코기를 썰어 병사들의 비빔밥 위에 얹어 주었다고 한다. 수적 열세. 군 장비의 열세에도 대승을 거둔 진주성대첩은 싱싱한 육회의 공로가 크다. 지금도 진주비빔밥에 유독 육회가 얹혀 나오는 이유다.

일본에서 육회는 '유케(ユッケ)'라 하는데 우리말 발음을 그대로 쓴다. 일본에서 김치를 '기무치'라고 우리말을 그대로 쓰는 것과 같다. 남의 것을 가져다 제 것인 양 잘 쓰는 일본의 특색을 보여준다. 일본은 육회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인데 한류열풍 덕분인지 요즘 육회는 일본 고기 구이집의 뺄 수 없는 메뉴가 됐고 한국인보다 더 즐긴다고 한다.

영국에 있는 한국 레스토랑에도 일본인은 단골손님이며 가장 즐겨 찾는 메뉴 중 하나가 육회다. 일본에서 발생한 육회 식중독 소식이 아무 상관 없는 재영요식업소에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다. 

혹시 일본인 친구가 한국 레스토랑의 육회까지 걱정한다면 이렇게 알려주자. 한국의 육회에는 오랜 세월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다고. 생고기를 요리할 때 쓰는 양념으로 소고기를 과학적으로 항균, 살균시킨다고. 마늘과 참기름이 얼마나 과학적인 살균 양념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육회를 할 때는 어떤 고기를 사용해야 하는지 오랜 세월 내려온 철칙이 있다고. 그런 고기를 고집하는 장인정신과 음식에 대한 예의가 있다고 알려주자. 

'유케'의 문제일 뿐 '육회'의 문제가 아니라고 알려주자.


헤럴드 김종백 haninheral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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