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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소록도와 조용필의 약속

hherald 2011.04.18 19:08 조회 수 : 1966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奐)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닐니리.

천형이라는 나병을 앓았던 시인 한하운의 <보리피리> 전문이다. 한센병으로 자기가 살던 고향을 떠나야 했던 시인은 이를 그리워한다. 돌아갈 수 없으니 보리피리나 만들어 불며 그리움을 달랜다. 인간사가 그립고 슬픔을 느끼는 사람으로서 나병환자도 똑같다. 오히려 그리움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한센병은 눈썹이 빠지고 손가락이 떨어지고 팔다리가 뒤틀리는 외형 때문에 사람들이 환자와 가까이 하기를 꺼리기도 하지만 전염성이 강해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그것이 한센병 환자의 가장 큰 고통이다. 몸이 떠나야 하니 마음도 떠난다. 한센병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마음마저 소외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소록도에 모여 산다.

섬 전체를 위에서 보면 작은 애기 사슴이 한발을 들고 막 뛰려는 모습이어서 소록도라 부른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섬이지만 일제 시대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로 수용하면서 일반인들과는 멀어져 버린 비운의 땅이 되었다. 지금은 한센병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바뀌고, 투병하던 환자도 죽거나, 완치돼 대부분 섬을 떠났다. 주말에는 섬의 아름다움을 찾아온 관광객이 더 많다고 한다.

소록도에는 주소가 1번지, 2번지 2개뿐이다. 2번지에 일반인과 격리된 300여 명의 한센병 환자가 살고 있다. 이곳에서 가수 조용필이 희망의 노래를 불렀다. 작년 어린이날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이곳을 찾아 한센인에게 멋진 공연을 선사했던 조용필은 당시 다시 방문하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물론 출연료도 없었다.

조용필은 공연 중간에 한센인들을 무대로 불러내 함께 노래와 춤을 추기도 했고 직접 객석으로 내려가 자리에 모인 한센인 300여명 모두의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었다. 관세청이 후원한 T셔츠를 한센인에게 직접 입혀주기도 했다. 어느 소록도 주민은 "자신들이 소외됐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에게 조용필의 방문과 공연은 마음의 안식이자 위로가 된다"라며 "많은 유명가수들이 소록도를 찾았고 다시 오겠다고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런데 조용필은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다.

공연을 마친 조용필의 마지막 인사는 "내년에 봬요"였다. 함께 어울림이 가장 절실한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는 조용필. 그래서 그는 '국민가수'라 불린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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