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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조봉암과 이광재 그리고 사법살인

hherald 2011.01.31 19:45 조회 수 : 2112

독립운동가였고 제2·3대 대통령 후보였던 죽산 조봉암은 1958년 간첩죄로 교수형을 당했다. 그의 사형집행은 당대에도 사법살인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승만 정권이 그에게 씌운 죄는 간첩죄, 국가보안법 위반 및 무기불법소지였다. 이승만 정권은 대통령 선거에서 턱밑까지 쫓아온 그가 두려워 그를 간첩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당시 1심 재판부는 간첩죄에 대해 '무죄'를 선거했다. 이승만이 분노했다. 조봉암 사건 1심 판결을 맡은 판사를 처단하겠다고 말했다. 심지어 헌법을 고쳐서라도 이런 일이 없도록 엄정하여야 한다 라고까지 했다.

 

 

이승만의 격노에 알아서 기기로 한 2심과 대법원은 조봉암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독재자의 뜻을 헤아린 사법살인이었다. 정의가 있는 재판이었다면 1심보다 낮은 형량이 선고돼야 했다. 2심에서는 조봉암에게 간첩 자금을 줬다고 진술한 사람이 진술을 번복해 검찰과 특무대의 협박이 두려워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죄를 더 높여 사형을 선고했다. 1958년 7월 30일 조봉암의 재심청구는 기각되고 다음날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리고 52년의 세월이 흘렀다. 2011년 1월 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승만 정권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당한 조봉암에 대한 재심에서 국가변란과 간첩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헌정사상 첫 ‘사법살인’의 피해자 조봉암은 52년 만에 누명을 벗고 명예를 회복하게 됐다.

 

 

그로부터 1주일 뒤 1월 27일, 대법원은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광재 강원도지사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정권의 반대편에 선 이들을 향한 또 하나의 사법살인이라는 주장이 세다. 이승만이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조봉암이 싫었듯 지금 정부는 노무현의 남자이면서 한나라당의 텃밭인 강원도에서 승승장구하는 이광재가 싫었을 것이다. 이승만이 '양명산'이라는 사람의 진술만 갖고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았듯, 지금 정부도 '박연차'의 진술에만 의존한 판결을 내렸다. 박연차가 같이 돈을 주었다고 진술한 한나라당 의원은 무죄요, 민주당 의원은 유죄였다. 소위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민주당 3인은 매장되고 한나라당은 멀쩡하다. 도민의 직접투표로 도지사가 됐지만 사법부는 이를 뒤집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광재 본인의 말처럼 <지사직을 잃어서 슬픈 게 아니라 오늘의 이 같은 현실이 가슴 아프다>

 

 

사법살인을 저지른 이승만은 조봉암이 죽은 지 아홉 달 후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영원할 것 같은 그의 시대는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국민의 저항 앞에 무력하게 그리고 처절하게 저물었다.

노무현을, 한명숙을, 이광재를 이렇듯 '사법살인'하는 정권의 속내는 그들이 두렵기 때문이다. 당당하게 맞서기 어려운 상대가 된 거목을 흠집 내는 졸렬한 수단인 '사법살인'이 죽산 조봉암이 떠난 지 52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계속되는 건 이 정권이 이승만 정권의 비극을 반면교사로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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