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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고 박일배 목사님을 위한 단상

hherald 2010.12.23 17:35 조회 수 : 3978

 


전화기로 박일배 목사님이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들은 아내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세상 어느 누군가의 죽음인들 예상하고 있었으랴마는 한 주만 칼럼을 쉬겠다는 사모님의 전화를 받은 것이 엊거제인터라 이런 이별은 전혀 예상치 못 한 일이었다. 이렇듯 갑작스런 부고를 접하니 사람의 관계가 그렇게 허망할 수가 없었다.

 

 

박일배 목사님과의 인연은 글로 시작됐다. 한인헤럴드에 칼럼을 연재하는 일로 5, 6년 전에 처음 만났을 때 그냥 깔끔한 이미지의 젊은 목사님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몇 주 그분의 글을 보면서 소위 말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적어도 목사님의 글이면 결국 가르치는 내용의 글로 귀결될텐데 박 목사님의 글은 그토록 솔직한 자기고백 속에서 건져갈 것을 읽는 이의 몫으로 남기는 여유로운 배짱이 있었고, 목사가 얼마나 사람답다는 것을 보여주는 용기가 있었다. 나는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박 목사님의 용기가 목사라는 어려울 수 있는 상대적 위치를 우리 곁에로 자리를 옮겨 앉게 한 요인이 됐다고 믿고 있다.

 

 

박일배 목사님의 용기는 이민교회 가난한 목사의 삶을 가감없이 보여줬다. <이민목회는 담임목사가 아니라 ‘매일머슴’으로 살아야 한다. 아이들 학교입학과 전학에서부터 교우들의 비자문제까지, 기러기엄마들의 뒤치다꺼리가 교회 일의 반이었다. 하다못해 한밤중에 전구까지 바꿔 끼워줘야 했고, 물이 빠지지 않는 하수도까지 달려가 뚫어줘야>하다보니 <정작 아들놈은 천덕꾸러기가 되어 이집 저집 맡겨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리고 박 목사님은 <서민들의 밥벌이 미니캡 운전사>를 해서 <손님을 태우고 공항을 다녀오면 대학진학을 앞둔 아들놈의 1시간 과외비가 떨어>지니 <더 이상 과외비가 부담스럽지 않다>고 했다. 아들의 과외비가 부담스러웠던 목사였다.

 

 

이 분은 <먹고 사는 문제와의 전쟁... 온갖 사람들과의 어이없는 전쟁... 신앙과 도그마 사이에서 발생하는 애매한 함수관계와의 전쟁... 상할 대로 상한 자존심과의 전쟁...> 속에서 <하루하루가 전쟁>인 가운데 <목회를 하다 보면 술 한 잔을 마시고 취해서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사람보다, 맨 정신을 가지고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보게 된다>는 것을 고백하는 용기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키우던 고양기가 죽어 집 마당에 묻어주고는 눈물을 참으려다 결국 <어느새 흘러내린 눈물이 콧물과 범벅>이 되는 감성을 가진 목사였다.

 

 

이분의 가족사랑은 유별났다. <나는 좀 유치해서 그런지 이 나이가 들어서도 아직까지 내 앞에서 감동하는 아내의 모습이 보고 싶다>면서 한국에서 받은 강사 사례비를 몽땅 털어 아내가 좋아하는 시계를 사서 생일날 내 놓겠다고 숨길 곳을 고민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시계부터 꺼내놓는다. 힘든 시절 내셔날갤러리에서 <‘측백나무가 있는 밀밭' 앞에서 환하게 웃던 아내 얼굴이 내 마음에 판화처럼 새겨졌다>는데 그 이별이 얼마나 아팠을까. 어머니가 뒷마당에 심어놓은 라일락을 보고 <죄송한 마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이런 이별이라니. 정말 고인의 표현처럼 <자신의 가치를 시위라도 하듯, 전혀 생각하지 못한 시간에 갑자기 떠나 사람을 허망하게 만든다>.
 
박 목사님이 꿈꾸던 인생은 <굼벵이처럼 서러운 바닥 인생을 살더라도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허물벗기를 하겠다는 결단>이라고 했다. 끝없는 허물벗기를 하실 그분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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