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헤럴드 단상

 

 

이번 선거는 한마디로 퇴보했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최소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가는 장치가 마련됐다면 이번 선거가 역대 재영 한인회장선거 중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되는 선거가 될 수 있었고 앞으로 있을 선거의 표본이 될 기회였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만드는 제도적 차원이 마련됐다면 이번 선거는 축제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런 꿈은 이미 물 건너갔다.

 

 

이런 선거를 꼭 해야 하나라는 회의감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다. 선거는 있어야 한다. 선거 자체는 그래도 민주주의의 꽃이며 엄연한 현실 제도다. 그런데 이번 한인회장선거는 선거에 임하는 민심이 의식적으로 깨우친 상태고, 선거를 관리하는 선거관리위원들이 공정한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 수준으로 구성됐는데도 불구하고 선거의 제도적 차원이 그것을 실현할 기회를 앗아가 버렸다. 깨끗한 선거는 제도적 차원과 의식적 차원이 동시에 채워져야 가능하다. 단언컨대 재영한인사회에서 선거를 보는 의식적 차원은 성숙하다. 오히려 미숙한 제도적 차원이 올해 이상한 선거풍토를 낳았다.

 

 

미숙한 제도는 영악한 타짜의 먹이가 됐다. 민심을 얻는 것이 아니라 생판 몰라도 선거인명부에 사람만 채우면 이기는 선거가 됐다. 하루 수십 명이 한인회비를 내고 있다고 한다. 얼마나 급했던지 어떤 경우는 회비를 내는 사람의 이름도 없이 한인회비가 입금된다고 한다. 돈부터 내고 이름은 나중에 올리는 식이다. 이토록 많은 한인이 재영한인회에 자발적 관심을 가진다면 이번 선거는 축제다. 그런데 오직 선거 타짜들의 축제가 되었다.

 

그래서 스스로 물어보자. 마음이 움직였느냐고. 진정으로 마음을 움직인 양심의 대표자를 봤느냐고. 그래서 등록을 했느냐고. 기꺼이 자신의 돈을 써가며 등록을 했느냐고.

 

학생도 50파운드를 내야 선거권을 주는 이런 제도에서, 친한 친구나 형제가 아니고서야 누구에게 투표를 독려할 수 있을까. 그런데 선거를 앞두고 자발적으로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한인들의 관심. 이게 과연 민심을 대변한다 할 수 있을까. 민심은 천심이라 항상 옳다는데 돌아가는 일련의 과정이 과연 민심을 보여주는 것일까.

 

아니라고 해도 그들은 알겠지. 표를 산 사람과 표를 판 사람과 이를 중개한 사람들. 그들은 알겠지. 그 후보가 어떻게 당선을 만들었는지. 그 사람이 얼마나 쪽팔리는 당선을 했고, 그 더러운 선거에 자신들이 어떻게 일조했는지.

 

언제부터였나. 재영한인의 역사가 추악한 한인회장 선거의 역사로만 비춰지고 있는 느낌이다. 몇 번째 되풀이되는 이런 선거풍토를 만들어내는 한인사회 몇 안 되는 선거의 타짜들. 한인회장이 되어서 어떤 일을 하겠다는 것은 공수표요, 오직 한인회장이 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이런 타짜들이 당선을 만들어낸다면 그건 역사상 가장 쪽팔리는 당선이 될 것이다. 그런 인물을 당선시킨 우리도 마찬가지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50파운드에 양심을 판 이런 추악한 자화상을.

위로